코로나19로 인해 올해도 김장 포기 가족들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전보다는 덜하겠지만 11월을 앞두고 가정마다 배추며 태양초 고춧가루, 젓갈 등을 준비하는 모습들이 올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파트가 국민 거주형태로 대세가 된 지 오래되면서 냉장고 문을 열면 김장 김치들이 가득했던 모습들은 사라지고 이제는 김치냉장고 덕분에 냉장고에서 큰 김치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 첨단(?) 냉장고가 있기 전 나의 어린 시절 첫 냉장고는 파란색 스티로폼 아이스박스였다. 지금의 청년층들에겐 ‘라떼’ 이야기겠지만, 시장 얼음가게에서 아이스박스용 얼음을 주문하면 아저씨가 자전거 짐받이에 큼직한 직육면체 얼음을 싣고 와 아이스박스에 넣어 주셨다. 그 얼음이라는 것이 여름에 금방 녹을 것 같이 보이지만 아이스박스 속에 넣어두면 그래도 3~4일 동안은 수박과 식혜를 시원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이제는 그런 큰 스티로폼 아이스박스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지만 여전히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의 책장 속에 있다.
전기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큰 냉장고가 부엌 쪽 마당 한켠을 차지했다. 한옥집이라 부엌은 안방과 연결돼 있지 않았고, 부엌은 석유곤로로 밥을 짓는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라 냉장고는 부엌 바로 옆 마당에 두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했다. 마당에서 놀 때면 언제든 시원한 보리차를 꺼내 마실 수 있어 좋았다. 그 시절 냉장고는 지금처럼 꽉 채워져 있지 않았다. 김치, 두부, 생선, 고기 같은 신선한 식자재가 다였고, 냉동실에는 얼음과 동그란 통에 든 아이스크림이 모두였다. 냉동만두, 반조리식품이나 밀키트는 그 시절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단어들이었다.
이후,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하면서 엄마가 아들 사찰로 올라오실 때면 김치며, 냉동된 사골곰국이며 불고기들을 힘들게 고속버스를 타고 손수 싸가지고 오셨다. 내가 살던 아파트의 허기진 냉장고는 그것들로 하나둘씩 채워져 냉동실은 그들만의 차지였다. 그렇게 힘들게 올라와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녀석들은 몇개월 뒤 다시 엄마가 오신다는 연락을 받으면 슬프지만 버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돌이켜 보면 냉동실은 내게 그런 엄마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엄마가 차려 주는 밥상을 그리워하면서 엄마의 정성이 냉동된 그 녀석들은 왜 그렇게 돼야만 했을까? 아마도 냉동실에 있으니 눈에 잘 보이지 않고 해동하는 과정 또한 번거로워 그랬던 것 같다. 마치 연인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듯 음식과 인간도 그러한 것 같다.
집이 아닌 곳에서 냉장고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곳은 첫 직장에서의 탕비실이었던 것 같다. 탕비실 냉장고에는 탕비실이 음식을 요리하는 장소가 아니었기에 주로 직원들의 한약 봉지, 배즙, 드링크 음료들이 주로 보관돼 있었다. 한약과 배즙도 결혼 안한 직원들에겐 타지에서 직장생활로 고달픈 그들의 어머니가 챙겨 주었으리라. 그러고 보니 냉장고는 단순히 음식을 신선하게, 오래 보관하는 물리적 박스가 아닌 서로의 사랑을 전하는 아름다운 정신적 공간이었다.
그러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의 아버지는 냉동창고를 운영하고 계셨고, 아내의 집을 방문하는 날이면 냉동창고에서 들고 오신 갈비며 참치며 자주 먹기 힘든 음식들로 한상이 차려졌고 그날은 제대로 입이 호강하는 날이었다. 아파트만한 냉동창고에 국내 식품업체들을 위한 각종 식자재들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하시니 앞으로 아내와의 삶에서 먹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만난 아내와 함께 네덜란드로 갔다. 첫 집으로 구한 기차역 뒤 옥탑방에는 자그마한 냉장고가 하나 있었다. 하지만 냉장고 크기도 그 집만큼 작았다. 냉동실은 한뼘만 했고 무릎을 꿇고 마치 기도하듯 냉장고 안을 뒤져야 했다. 집에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하는 날이면 맥주를 둘 곳이 없어 미지근한 맥주를 마시는 날이 많았고, 그나마 겨울이면 옥탑방 창문을 열어 눈 쌓인 지붕 한켠에 맥주병들을 쌓아두었던 추억도 있다. 어느 날 더치 친구는 자기 기숙사에 큰 냉장고 한대를 공유하고 있는데 어떤 도둑놈(하우스메이트)이 자기 식빵과 치즈를 훔쳐갔다며 분노하던 표정들 모두 냉장고에서 비롯된 이제는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됐다.
아이가 생기면서 조금 더 큰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고 그곳엔 방, 천장, 벽, 문, 창, 변기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유롭지 않은 유학생활이었지만 갓 태어난 아이를 위해 우선 급한 가전제품들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입주 청소를 해야 하니 제일 먼저 청소기를 샀고, 아기의 옷을 자주 빨아야 하니 세탁기 그리고 잘 먹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으니 세식구가 먹고 살기에 여유로운 크기는 아니었지만 가성비 좋은 투도어 냉장고도 샀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대형마트가 아파트 1층에 들어왔고, 그 대형마트는 사실 우리에겐 엄청 큰 냉장고나 다름이 없었다. 요리를 준비할 때면 야채나 고기를 바로 내려가 손쉽게 들고 올 수 있었고 디저트 아이스크림도 비좁은 냉동실을 차지하는 대신 소화도 시킬 겸 내려가 사오곤 했다. 그 덕에 우리 세식구는 작은 냉장고로도 기나긴 유학생활을 잘 버틸 수 있었다.
추억 속에 등장하는 냉장고는 사실 그 기원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냉장고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얼음저장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1800년대 인류문명의 4대 발상지 중 하나인 유프라테스강 지역에서 시작됐다.
차가운 음식을 마시기 위해 먼 곳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얼음을 가져와서 보관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 전국시대의 예기에도 겨울에 얼음을 저장했다가 여름에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 얼음은 매우 귀한 물건이라 빙고에 넣어두고 국가가 관리하며 왕과 제후, 고위관리들에게만 허락됐다고 한다.
유럽에서도 오래 전부터 스위스 산악지대에서 가져온 눈을 뭉쳐 벽 사이에 넣고 짚이나 흙으로 단열처리를 한 저장고를 만들어 와인이나 치즈를 보관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냉동실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얼음은 고대 로마에서도 황제와 귀족들만을 위한 사치품이었다고 한다.
19세기 중엽에 매서운 추위로 유명한 미국의 뉴잉글랜드 지방에서는 얼어붙은 호수의 얼음을 잘라 배에 실어 인도나 호주와 같은 더운 나라로 수출하는 사업이 번성했다고 하니 전기냉장고가 발명되기 이전까지 얼음은 여전히 귀하고 비싼 물건이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냉장고는 인류가 오래 전부터 사용해온 물의 증발을 통한 냉장의 원리를 기계적 전기적으로 옮긴 것이다. 냉장고는 히트 펌프을 통해 액체를 빠르게 증발시켜 실내의 열을 실외로 빠르게 옮겨 차갑게 만든다. 빠르게 팽창하는 증기는 운동 에너지를 필요로 하며 인접 지역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끌어와 에너지를 잃고 더 차가워지는 원리인 것이다.
에어컨을 최초로 개발한 미국의 윌리스 캐리어(Willis Carrier)도 사실은 이미 개발된 기계식 냉장고의 원리를 에어컨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에어컨은 냉장고에 문을 없애고 열 교환이 냉장고 뒤쪽이 아니라 집 바깥에서 일어나게 하는 것만 차이가 있는 것이다.
1748년 액체가 기체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열을 흡수하는 원리를 이용해,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의 윌리엄 컬렌(William Cullen)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공 얼음을 만드는 실험을 통해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1805년 올리버 에반스(Oliver Evans)가 최초의 기계식 냉장고를 설계했지만, 1834년이 돼서야 제이콥 퍼킨스(Jacob Perkins)에 의해 실제로 작동되는 최초의 기계식 냉장고가 특허를 받게 된다.
1851년 영국인 제임스 해리슨(James Harrison)이 기계식 공기압축기를 장착한 산업용 냉장고를 선보이면서 최초의 압축식 냉장고가 등장했다. 이 냉장고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맥주양조장과 육가공업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1913년 미국인 프레드 울프(Fred Wolf)가 최초의 전기 가정용 냉장고를 발명했지만, 1925년이 돼서야 제너럴일렉트릭사에 의해 가정용 냉장고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부터 급격한 인구증가와 농수산 축산업의 발달 그리고 도로와 교통수단의 발달로 냉장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산업용으로 주로 사용됐던 것이 이제는 가정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모든 냉장고는 암모니아와 같은 독성가스가 냉매로 사용됐다. 그때까지 많은 가스 누출로 인한 치명적인 사고를 경험하면서 미국은 안전한 프레온가스를 개발하게 됐고 경제적이고 안전한 프레온가스로 냉장고의 생산과 수요가 급증하게 됐지만, 결국 오존층을 파괴하는 주범이 되면서 프레온가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이제는 대체 냉매가 냉장고에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의 냉장고는 기술의 냉장·냉동기술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지만 냉장을 요구하는 다양한 제품들과 사용자의 다양한 요구로 인해 냉장고는 기능적으로 세분화되고 있다. 예전처럼 음식을 넣어두는 냉장고뿐만 아니라 이제는 김치 냉장고, 와인 냉장고, 화장품 냉장고, 쌀 냉장고, 생선 냉장고도 구입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냉장고들 간의 차이점은 사이즈와 형태뿐만 아니라 최적의 보관 온도 유지에 있다. 예를 들면, 와인냉장고는 최상을 맛을 유지하는 온도 즉, 화이트와인 5~8도, 레드와인 13~18도를 유지하게 해주고, 화장품냉장고는 온도가 기존 냉장고처럼 낮으면 화장품의 유분과 수분이 분리될 수 있어 항상 12~19도를 유지해 주게끔 설계돼 있다.
국내에서는 외교관들이 귀국 시 가져오거나 미군부대 PX를 통해 미제 냉장고가 암암리에 유통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외제 냉장고는 너무 비싸 서민들은 꿈도 꿀 수 없을 정도의 사치품이었다.
그러던 중 1965년 금성사가 국내 최초로 눈표냉장고를 출시하면서 냉장고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이후 1970년대 중반 대한전선과 삼성전자도 냉장고 시장에 뛰어들었고, 1968년 이때까지만 해도 냉장고 보급률은 600가구당 1대였고, 1980년대말이 돼서야 대부분의 가정에 냉장고는 필수품이 됐다.
2013년에 가구당 평균 2대의 냉장고(김치냉장고 포함)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하니 좁디좁은 아파트에 사는 한국인들에겐 정말 애증의 가전제품인 것 같다. 1996년 삼성전자는 ‘독립만세 냉장고’라는 별칭을 가진 냉장실과 냉동실의 냉각을 별도로 가능케 하는 독립냉각 기술을 세계 최초로 적용한 냉장고를 출시해 음식물들을 더욱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의 영향으로 냉장고는 백색가전의 대표 가전제품으로 모두 하얀색으로 시판됐지만, 2000년대 이후 소재와 인쇄기법의 다양화로 인해 이제는 오히려 흰색 냉장고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특히, 한국에서는 거실 구석에 놓인 스탠드형 에어컨처럼 냉장고도 손님이 집에 올 때면 주방 쪽 시선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이라 가전보다는 가구처럼 인식돼 에어컨처럼 인테리어 가구로도 그 기능을 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등장한 투도어 냉장고는 제빙기와 정수기가 달리고, 냉장실의 육중한 문을 열지 않아도 물이나 음료를 꺼낼 수 있는 홈바가 추가됐다. LG전자는 2010년 세계 최초로 매직스페이스라는 냉장고 내부의 별도 수납공간을 만들어, 자주 먹는 음료 등을 이곳에 보관하면서 육중한 냉장고 문 전체를 여닫는 횟수를 줄여 사용자의 물리적 그리고 전기요금이라는 경제적 부담을 확 줄여주는 혁신적인 시도도 있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3도어 혹은 4도어로 진화한 냉장고는 냉장과 냉동 위치를 사용자 마음대로 설정할 수도 있고 2중 구조의 도어와 LED 조명, 카메라, 디스플레이, 터치스크린, 타블렛 기능 등이 추가되면서 점점 스마트해지고 있다. 냉장고 앞에서 음악도 듣고 웹서핑, 레시피 검색, 문자와 사진 확인 등 스탠딩 키친 스테이션으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서서 일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지만 서서 무엇인가를 장시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사용자의 행동패턴을 이해한다면 덩치 큰 스탠딩 키친 스테이션으로서 냉장고의 새로운 기능들은 왠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빙고로서 냉장고의 기원을 돌이켜보면 주방 가전들의 기능들을 모두 모아놓은 듯한 오늘날의 냉장고는 왠지 과해 보인다. 엄마나 아내의 사랑을 전하지는 못할망정 냉장고에게 단순히 많은 스마트 기능들로 채우는 것은 냉장고를 머리 좋은 바보로 만드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인테리어적 요소와 편리한 기능들에만 지나치게 치중돼 있는 수많은 냉장고들을 보고 있자면, 먹고 나누는 즐거움을 통해 삶의 가치를 경험케 하는 그런 의미적 경험을 전해주는 냉장고가 더욱 절실해 보인다.
최근 냉장고 문을 투명화해 냉장고 안을 문을 열지 않고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술은 아주 흥미롭다. 하지만, 냉장고 속 식자재들이 구석구석 앞뒤로 무엇이 있는지는 결국 문을 열어 요리조리 물건들을 뒤적뒤적 해봐야 확인이 가능하다. 그런 현실을 고려할 때 투명 유리 기술보다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식자재들의 양과 상태를 한눈에 흥미롭게 보여주는 인포그래픽이 제공된다면 사용자들의 경험 더욱 재미있지 않을까?
빙고로서의 냉장고는 한알로 하루 영양을 보충할 수 있는 알약과 같은 새로운 대체식품이 탄생하고 대중화되기 전까지는 그 큰 덩치를 줄인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대신, 부피를 줄일 수 없다면 사용자의 다양한 경험들로 공간을 세분화한다면 전혀 새로운 냉장고 경험이 되지 않을까? 예를 들면, 과일·채소·생선 이런 방식의 구분이 아니라 다이어트 식단처럼 단백질·섬유질·탄수화물·디저트 공간으로 말이다. 때로는 식자재의 색깔로 분류하고 보관할 수 있는, 때로는 상황에 따라, 혼자 있을 때, 함께 먹을 때, 파티할 때처럼 사용자의 컨텍스트에 따라 식자재의 구성과 보관이 새롭게 재구성될 수 있는. 그런 재미있는 냉장고가 주방의 중심이 됐으면 좋겠다.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 회장은 회원제 신선제품 매장인 ‘허마셴생’을 인수해 ‘냉장고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라는 슬로건 아래 신유통 실험모델을 운용하고 있다고 한다. 1인가구의 급격한 증가 속에서 주방의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냉장고에 신선제품들을 보관하는 대신 신선제품 매장을 확장된 냉장고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육식이 이제는 빈자들을 위한 주식이 됐듯, 과거에 사치품이었던 냉장고가 가까운 미래에 빈자들을 위한 가전이 안 된다는 보장도 없을 듯하다. 이런 맥락에서 신선제품 유통 물류의 새로운 시도들을 이해하면서 기존의 냉장고를 소형화·특화해서 신선제품은 요리 전에 바로 픽업하거나 배송받고, 냉장고는 기존의 시원한 음료에 집중하고 주방 보조의 기능을 부여하면서 몸집을 줄여 나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오히려 배송된 신선제품을 일시적으로 잠시 보관하는 방식의 개발이 현재 대동소이한 수많은 냉장고의 리디자인보다 미래에 훨씬 주목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스릴러 영화 속에 등장하는 냉장고들은 음산한 긴장을 야기한다. 마치 살해된 시체나 장기의 일부분이 보관돼 있는 양 정부는 워라밸을 부르짖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의 일상과 회사생활은 스릴러처럼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그런 스릴러 같은 일상에서 주방은 요리, 설거지, 그리고 뒷정리까지 해야 하는 노동의 공간임을 고려할 때 스릴러 영화에 등장하는 허연 덩치 큰 냉장고 대신 작지만 유쾌한 경험을 주고 그래서 이야기가 있는 빙고(氷庫)를 기대해보는 것은 지나친 빙고(Bingo)일까?
김차중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본 칼럼은 2021년 10월 18일, 19일, 22일 울산매일신문 18면, 14면, 14면에 각각 ‘[특별연재] 인간, 기술 그리고 디자인 <6> 냉장고 상’, ‘[특별연재] 인간, 기술 그리고 디자인 <6> 냉장고 중’, ‘[특별연재] 인간, 기술 그리고 디자인 <6> 냉장고 하’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