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는 요즈음 어김없이 노벨상 시즌이 돌아왔다. 특히, 우리나라는 그렇다. 수상에 대한 갈증과 부러움, 약간의 질투심이 합쳐진 묘한 느낌이 불편하다.
이공계 분야의 세계적 권위를 가진 학술 DB인 네이처인덱스(Nature Index)는 지난해 발간된 한국 특집호를 통해 우리나라 과학기술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인 평가를 발표했다. 요지는 한국의 과학기술 미래발전 전략이 과거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추격하는 단계에서 이제는 기초연구와 독창적인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등 세계 최초, 최고가 되려는 전략으로 바뀌고 있으며 서서히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접하면 조금 위안이 되면서 우리는 노벨상에 대해 너무 조급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유력 연구기관 중 하나가 1910년대에 설립돼 수십 명의 노벨상을 배출한 독일의 막스프랑크연구소와 3명의 수상자를 낸 일본의 이화학연구소이다. 100년 이상 꾸준히 투자한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최근 10년, 비로소 기초과학에 집중하고 있다. 좀 더 기다려 줄만 하다.
한편, 올해 2021년 노벨 물리학상은 놀랍게도 기후변화 연구자에게 돌아갔는데, 슈쿠로 마나베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클라우스 하셀만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원, 조르지오 파리시 이탈리아 사피엔자대 교수가 선정됐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노벨상은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7년 인간 활동과 지구 온난화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전 세계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 공로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 IPCC)’과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공동 수상했다. 이때 노벨 과학상이 아니고 평화상이 수여된 것은, 기후변화 문제가 단순한 환경적 문제라기보다는 인류의 안보를 위협하는 국제적 어젠다로 자리매김할 것을 촉구한 상징적인 의미라고 평가했다.
2018년에는 기후변화의 경제적 효과를 연구한 윌리엄 노드하우스 미국 예일대 교수 등에게 노벨 경제학상이 돌아갔다. 해당 연구 결과는 현재 탄소중립 정책과 같은 기후변화 방지 정책 수립 및 평가에 필수적으로 활용되는 정량적 모델을 고안한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전 세계가 기후공동체가 된 현재, 올해 다시 대기순환과 기후변화 구조를 예측할 수 있는 기후모델링이라는 강력한 과학적 도구를 개척해 관련 연구의 근본적 토대를 마련한 공로를 인정하여 물리학상까지 수여한 것이다. 기초과학적 성과, 경제사회적 효과 그리고 세계 안녕에 대한 기여 등 모두 각각의 가치가 인정된 것이다.
기후변화의 과학적 증거를 기록하고 그 과학적 메커니즘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과거 수십 년 동안의 성공과 실패를 반복한 놀랄만한 진보의 역사이다. 실제로 1970년대 중반까지는 지구 냉각화에 대한 다수의 기사가 대중 매체에 게재됐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북반구 평균 기온이 하강하는 관측 치와 함께 1600년에서 1900년까지의 혹한기인 이른바 ‘소빙기 (little ice age)’ 시대로 회귀할 것이라는 주장도 소개됐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1970년대 중반부터 지구의 온도가 다시 높아지기 시작하고, 과학자들에 의한 놀랄 만큼 집요한 연구 결과와 엄밀한 과학적 증거에 의해 빗나간 예측이 되고 만다. 이들의 연구에서 확인된 지속적인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와 온도 상승 메커니즘은 오늘날 정치, 경제 그리고 국제협상 등 외교의 중요한 의사결정마다 결정적인 과학적 근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나라 노벨상 수상 가능성은 이미 여러 언론 지상에서 많은 이야기가 회자되고 대중의 관심이다. 다만, 정작 노벨상이 갖는 의미를 해석해 잘 살펴봄으로써 미래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지혜도 같이 필요하다. 특히, 물리·화학 등 노벨 과학상은 인간 최고의 지성의 한계를 극복한 세계적으로 가장 빛나는 도전적 업적에, 그리고 동시에 인류 공영과 복지에 공헌한 연구 작업과 결과물에 수여된다. 그리고 관련된 과학적 지식은 매우 어려운 이론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교육 수준을 갖추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다시 재해석되어 유통된다. 기후변화와 같이 매우 복잡한 과학적 메커니즘과 사회·경제·정치외교적 파급 효과에 대해 초등학교 학생에서부터 각 나라의 정상까지 공통된 이해를 공유하는데 세 번의 노벨상은 일종의 책임보험의 역할을 한다. 사회 구성원들의 공통된 이해와 관심은 불필요한 그리고 소모적 논쟁 없이 당면한 문제 해결에 집중하게 만든다. 즉, 과학이 상식으로 되어가는 과정이다.
송창근 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
<본 칼럼은 2021년 10월 22일 경상일보 18면 ‘[경상시론]노벨상, 과학이 상식으로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