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의 효율성이 화제다. 전기차가 생각만큼 친환경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는 어느 일간지 기자의 글이 큰 반향을 불렀다. 서울-부산 한번 가는데 일반 가정 한달 전기료의 3분의 1이 든다고 나온다. ‘엄청난 문제!’ ‘큰일이다!’라며 다수가 동조했다. 저마다 전기차 효율과 친환경이미지의 거짓을 성토했다. 필자는 처음 그 기사를 읽는 순간 헛웃음이 났다. 전력량에 대해 조금만 알아도 그 기사가 얼마나 의도적으로 쓰여진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대부분은 한달치 전기의 3분의1을 서울-부산 1회 주행에 쓴다는 ‘사실’에 놀라 디테일 보기를 외면해버린다. 안타깝다. 필자는 그 기자의 노련한 재치에 감탄한다.
디테일을 보자. 전기차는 전기에너지로 자기장을 이용해 축을 돌린다. 내연기관차는 휘발유나 경유를 실린더에서 폭발시켜 피스톤을 미는 힘으로 축을 돌린다. 내연기관의 에너지 변환단계가 하나 더 많다. 즉 동일 투입량 기준으로 에너지 효율이 낮다. 열손실이 커서 최신 내연기관도 에너지 효율은 30%를 넘지 못한다. 그러나 전기모터의 에너지 효율은 80%를 상회한다. 심지어 화석연료를 태워 전기를 만들어 자동차를 구동시켜도 전기차의 효율이 2배 이상 높다. 그런데 어떻게 위의 기사가 많은 동조를 얻었을까? ‘한달 전기료의 3분의1을 서울-부산 한번 가는 데 쓴다는 ‘팩트’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대수롭지않게 읽으면 전기차의 효율이 심각하게 낮다는 생각이 확 든다.
하지만 당신이 평소 전기료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르다. 일반 가정의 한달 전기료가 얼마인가? 필자는 5만원 정도. 우리나라 전체 가구 평균은 3만원 미만이다. 서울-부산 편도 약 400㎞를 운행하는데 9000원이 든다는 뜻이다. 필자의 기준으로도 1만7000원. 세상에! 주유소에 가본 여러분은 안다. 9000원어치 휘발유나 경유로 몇 ㎞를 갈 수 있을까? 전기차 충전에 적용된 그 어떤 할인을 다 걷어내도 비교가 안된다.
디테일의 핵심이 바로 ‘전문성(professionality)’이다. 우리가 흔히 나누는 수준의 개념은 아마추어와 프로다. 즉 어떤 영역의 전문가라면, 디테일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자동차, 전기전자, 엔진이나 에너지, 공학, 모빌리티 전문가는 위 주장이 사실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생산한 왜곡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짚을 수 있어야 한다.
멀쩡한 사실이 의도에 따라 대상을 왜곡하는 근거로 쓰이는 ‘무서운’ 세상이다. 위의 사례 말고도 많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노력이 무의미하다거나, 기상이변과 지구온난화가 인류가 배출한 탄소 때문이 아니라는 궤변들이 대표적이다. 객관적 근거로 제시하는 팩트들은 하나같이 여러 영역에 걸친 ‘숫자’나 ‘값’들의 조합이다. 플라스틱 재활용 비율을 숫자로 표기해서 개인의 노력이 미치는 영향의 미미함을 부각시킨다. 수거-분류-가공-제조에 드는 비용을 모두 재생플라스틱 생산비로 계산하면서, 새 플라스틱 생산비로는 재료비와 가공비만 친다. 그러면 당연히 재생플라스틱이 더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새 플라스틱생산을 위한 석유석탄채굴-정제-재료추출-가공까지의 공정이나 탄소비용은 제외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처럼 통계나 실험값도 의도를 갖고 짜맞추면 그럴싸한 근거가 된다.
그래서 다방면의 디테일을 볼 줄 아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나의 ‘전문적 견해’가 다른 영역에 영향을 주고, 의도치 않은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과거의 전문가는 고유 영역에 한정했지만 현재는 컨버젼스-융복합의 시대다. 디자인이 공학도 만나고 서비스도 만나고 경영도 만난다. 화학이 미술을 만나고, 음악이 물리도 만난다. 무수한 결합이 나오고 다시 서로 영향을 준다. ‘한우물파기’에서 ‘오지랍퍼’로 전문성·전문가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 분야 너머 연관된 왜곡을 찾고 오류를 바로잡는 디테일은 전문가, 당신에게 달렸다. 눈을 부릅뜨시라. 악마는 디테일 속에 숨어 있으니까.
정연우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본 칼럼은 2021년 11월 16일 경상일보 15면 ‘[정연우칼럼]전문성의 변화’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