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면서 과거를 되짚어 보는 것과 다가올 미래를 전망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직면한다. 과거를 다시 되돌려 보는 것은 결국 미래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또는 잘 해냈던 경험과 교훈을 기억해 내려는 인간의 지혜이다. 한편, 미래를 앞서 보려는 것은 무한 경쟁의 사회에서 한 발짝 앞서 나가 유리한 고지를 먼저 선점하고 예측되는 위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이다. 선(先)자는 시작과 끝은 이미 알고 있는 경우여서 최적화된 경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후(後)자는 시작만 알고 끝은 잘 모른다는 차이점이 있다. 즉 끝에 대한 예측은 잘 모른다는 불안감을 미리 살펴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이다.
지난주까지 영국의 한 도시에서는 120여 명의 세계정상이 모여 2주에 걸쳐 우리의 미래를 논의한 회의가 개최되었다.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COP 26)가 그것이다. 정상급 회의와는 별도로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 기후운동가들은 유엔 사무총장에게 기후위기를 코로나19에 준하는 위험 상황이라 보고 ‘3급 비상사태’를 선포하라고 요청하는 이벤트도 있었다. 이번 당사국 총회에서는 우리 지구공동체를 미래에 다가올 미증유의 위험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한 적잖은 성과가 있었다. 2015년 당사국 총회 이후 6년 만에 개최된 특별정상회의에서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120개국 정상들이 모여 지구온도 1.5℃ 이내 상승 억제를 위한 범세계적 기후행동 강화를 약속했다. 특히, 우리나라 문재인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미래의 주역인 청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청년기후포럼을 연례 개최토록 주문하였고 우리측 제안이 반영되어 결정문에 포함되었다.
또한, 이번 당사국 총회의 최대 성과 중 하나는 몇 년 동안 지난한 협상을 진행했던 파리협약의 세부 이행지침이 완전히 타결된 것이다. 향후 온실가스 감축, 시장 메커니즘, 적응행동, 재원 등 파리협약의 실질적 이행에 반드시 필요한 17개 규칙이 완비됨에 따라 이제 각국의 실천만 남은 셈이다.
우리는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러나 과거의 교훈을 새기고 미래를 예견해 준비하는, 두 가지 모두를 썩 잘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앞서는 이번 유엔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박수받을만한 점만 나열했는데, 이제는 우리의 미래를 한 치 앞도 모르게 만들 수 있는 즉,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는 결정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애초 기대했던 2030년까지 석탄발전의 완전한 퇴출은 기후위기에서부터 우리를 지켜줄 가장 핵심이 되는 장치였는데, 일부 국가의 강력한 반발과 마지막 날 합의문 작성 시한에 쫓긴 나머지 ‘단계적 퇴출(phase out)’에서 ‘단계적 감축(phase down)’으로 크게 후퇴해 결국 부실한 합의로 종료되어 버렸다. 이에 당사국 총회 의장의 사과 성명과 기후환경단체의 분노로 영국 글래스고의 주말은 그렇게 지나갔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우리의 연약한 지구는 실타래에 걸려있다”라고 아쉬움을 보였고 특히 “불행하게도 집단적인 정치적 의지는 미래의 모순을 극복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즉, 부적절한 정치, 경제, 외교적 이해관계가 미래에 다가올 위협과 모순을 해결하는 장애물, 여간해선 풀기 어려운 엉킨 실타래 같은 지금의 상황이 되었다는 것으로 현재 세대가 미래 세대에 짐을 떠맡기는 비겁함에 자조적인 한탄이다.
과연 앞일을 예측하는 게 얼마나 쉬울까? 멀지 않은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미 닥친 또는 다가올 기후재앙의 경고가 얼마나 많았던가! 수만 년간 지켜온 지구를 산업혁명 이후 150년 만에 대재앙의 위기로 몰고 갔던 과거의 실수에 귀를 닫고, 과학자들에 의해 그나마 비교적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된 불안한 미래 모습에도 눈을 감는다면, 항간에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는 노래 가사도 있듯이 인간의 역사는 우리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결코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송창근 울산과학기술원 도시환경공학과 교수
<본 칼럼은 2021년 11월 23일 경상일보 18면 ‘[경상시론]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