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기는 첨단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해 세상을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 이러한 혁명적인 변화가 선한 영향을 미치는 안전한 사회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첨단 과학기술을 잘 이해하는 선진 시민을 육성해야 하며, 기술의 악용을 막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할 것이다.
미국 IBM이 개발한 양자 컴퓨터가 앞으로 2년 이내에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지금의 전자 컴퓨터는 전자 흐름인 전류의 단락을 숫자 0과 1로 정한 2진법 방식의 비트를 사용한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현 컴퓨터의 이진법보다 훨씬 고차원적 진법으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장점을 합해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를 내는 꿈의 컴퓨터다.
이 양자 컴퓨터는 초저온에서 초정숙성을 갖춘 환경에서만 양자의 흐름과 파동간의 화음과 교감을 유지하며 작동할 수 있다. 그 과정이 수학과 물리학을 합친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전자공학, 재료공학, 기계공학 그리고 원자력공학을 모두 종합한 하드웨어 기술이 총화를 이루어야 바른 소리가 나는 첨단 과학 기술의 오케스트라인 셈이다.
지금의 컴퓨터만으로도 인공지능을 통해 우리를 놀라게 한 알파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양자 컴퓨터의 개발로 기계가 인간을 뛰어넘는 임계점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이를 잘 사용하면, 모든 영역의 과학기술 발전을 더욱 가속화하고, 기후변화와 코로나처럼 반인류적인 위협에 대한 대응이 가능해질 수 있다. 그러나 악용하면 핵무기보다 인류 존립에 더욱 큰 위협이 될 수 있기에 그 대책도 함께 연구해야 할 것이다.
한편, 지난주에 영국 글라스고우에서 폐막된 유엔 26차 기후대회인 COP26에서 중요한 결실이 나왔다. 탄소중립의 달성 시한이 완화됐을 뿐 아니라, 원자력이 지구 탈탄소화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산업 국가들에 숨통을 열어 준 것이다. 이제 2050년이면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아시아에 원자력발전소 500기 이상이 가동돼 세계에서 가장 원자력발전소가 밀집된 지역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경을 넘는 원자력 사고 문제에 미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처럼 급속히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우리가 이해하고 따라가지 못한다면, 최악의 경우에는 소수의 엘리트들이 권력을 장악해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온 것 같은 끔찍한 사회가 올 수 있다. 또 국민들이 첨단 과학기술을 두려워하면, 최첨단의 무기를 사용하는 강대국에 짓밟힐 수밖에 없게 된다. 임진왜란과 한일합방의 고통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우리는 현명한 길을 찾아야만 한다.
그 길은 사회 전체를 과학기술의 교육 현장으로 만들어, 국민 모두가 과학기술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오는 첨단 사회에 대한 왕성한 토론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데 있다. 이로써 우리가 첨단기술을 민주적으로 발전시키고, 동시에 위험을 통제하는 데 국민이 일조하는 선진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후쿠시마 사고가 최악의 상황에 치닫고 있는 와중에도 고리 1호기와 동형의 원전 2기에 대해 20년간 수명연장을 승인한 바 있다. 그 배경에는 그 안전 심사의 전 과정을 투명하고 명확하게 해, 국민이 이를 함께 확인하는 제도적 장치가 작동했다는 사실이 숨어있다.
첨단기술에 대한 검증 과정이 명확하지 못하면 곳곳에서 후진적인 사고가 반복되게 된다. 그런 깜깜이 사회는 발생한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한 채, 속죄양을 단정하고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우는 데 급급하게 된다. 반면 발전된 사회는 냉정하고 집요하게 숨어있는 원인까지 찾아내어, 근본적인 재발 방지대책을 세우고 이를 교육함으로써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는 것을 막는다. 인류의 위대함은 경험을 전수하는 능력에 있다.
우리의 공직사회는 점점 경직돼, 과거 솔선수범하고 명쾌히 책임지던 기풍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원전 비리 사태가 발생한 지 10년이나 흘렀지만, 피상적인 원인 외에 알려진 게 없다. 포항을 공포로 몰아넣은 지진의 원인도 지열발전 때문인지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 원인도 수차례 조사됐건만 오리무중이다. 계속 터지는 화재와 붕괴 사고도 근본 대책은 보이지 않은 채, 다음 사고가 예고되고 있는 것만 같다.
울산과 같이 한국의 대표적인 산업도시들이 성공적인 미래를 열어나가려면, 먼저 복잡한 산업 사고를 철저한 조사로 검증하고 근본 대책을 세울 과학기술자들의 싱크탱크를 시급히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 싱크탱크는 독립성, 전문성과 객관성으로 무장하고 오로지 안전과 환경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시민의 편에서 근본 원인을 밝히고,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미국에는 이와 같은 전문 시민단체가 첨단 기술의 길목마다 지키고 있다. 그래서 우주여행과 같은 신산업이 열광을 받으며 안전하게 출항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시민단체들은 안정적인 민간 기부금 덕에,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묵묵하게 사회 안전장치 역할을 수행해왔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시작은 어렵기 때문에, 지자체의 후원이 바람직하다.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지자체는 중앙정부로부터 수백억원에 달하는 지원금이 매년 받는다. 만약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가 난다면 그 지자체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치루고, 판도라와 같은 공포영화에 넘어가는 후진 사회로 다시 전락하게 된다. 그래서 시민과학기술조사단을 출발시켜 안전 선진국으로의 문을 여는 일이 현명한 지자체의 몫이 될 것이다.
톨스토이는 대작 “전쟁과 평화”에서 무적의 나폴레옹 군대에 모스크바를 내준 러시아 제정군대를 대신해서 농민들이 총칼을 들고 일어나서 오만한 침략군을 괴멸시킨 역사를 찬양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국민 모두가 첨단 과학기술로 무장해 안전 속의 혁신으로 선진국에 진입해야 한다.
‘예술의전당’이 한국의 문화가 세계적 수준에 도약하는 데 일조한 것처럼, K-과학기술문화의 창달을 목표로 한 ‘과학의전당’ 설립위원회가 지난주에 출범했다. 이제 시민과학기술조사단도 만들어져서 ‘과학의전당’과 함께, 앞으로 밀려올 첨단 과학기술의 쓰나미에서 K-안전으로 우리의 후세들을 지키는 시민운동이 시작되기를 희망해 본다.
황일순 UNIST석좌교수·세계원전수명관리학회장
<본 칼럼은 울산매일 2021년 11월 29일 18면 ‘[황일순칼럼] 안전한 첨단 과학기술사회를 위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