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에서 아시아 아티스트 중 최초로 대상을 받은 그룹, 로스앤젤레스 공연에서 21만 명에 이르는 관객을 동원하며 최고의 무대를 선물한 그룹. 그동안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을 연이어 실현시키는 이들은 바로 방탄소년단(BTS)이다. BTS가 걸어가는 길에는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다. 전 세계가 BTS의 음악과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감동받으며 울림을 만든다.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들은 이런 BTS를 선망하고 그들처럼 되기를 꿈꾼다. 연습실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미래의 K팝 스타가 될 자신을 그려보는 것이다. 이들이 흘리는 땀은 또 다른 미래 스타가 탄생할 든든한 토양을 만들고 있다.
세계적인 스타가 탄생하고 이들을 동경하는 아이들의 꿈이 모여 새로운 성공을 만드는 모델은 우리나라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분야에서 점차 늘어나고 있다. BTS, 손흥민, 김연아처럼 20대의 젊은 나이에 세계를 제패하고 아이들의 롤 모델이 되는 빛나는 인재들. 이런 모델을 과학기술계에서도 만들 수는 없을까?
최근 몇 년간 우리사회가 연이어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난제들은 모두 과학기술과 깊이 연관돼있다. 인공지능의 부상과 제조업의 변화, 반도체 소재를 둘러싼 무역 갈등, 전 세계를 위협하는 코로나19 팬데믹, 기후변화로 촉발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탄소중립까지. 이런 굵직한 이슈들이 우리 앞에 서서 모두의 삶을 좌우할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앞서나갈 것인가, 뒤쳐질 것인가. 심지어 어떤 문제들은 생존에 직결돼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을 내놓을 이들은 누구일까? 바로 과학기술 분야 인재들이다. 기술혁신을 선도하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해결책을 제시해나갈 과학기술인재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또 이런 기대에 걸맞은 성공의 기회도 우리 앞에 열려있다.
누군가 혁신적인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개발을 통해 미래를 열 수 있는 스타트업을 창업한다면 그는 막대한 경제적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탄소중립을 실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술개발에 성공한다면 이를 통해 창출될 환경, 산업, 사회경제적 가치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번뜩이는 기술창업 성공의 신화를 쓰는, 또 창의적인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놀라운 연구 성과로 과학계에 충격을 주는 ‘과학기술계 BTS’의 탄생을 꿈꿔본다. 세계를 무대로 반짝일 이들은 아이들이 선망하는 롤 모델이 될 것이다. 뛰어난 재능으로 무장한 아이들이 너도나도 과학기술 분야에 뛰어든다면 또 다른 혁신가의 탄생도 줄을 이을 것이다.
과학기술인재의 성공사례를 만드는 것은 ‘꿈’을 만드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나라 이공계 고교생들이 선망하는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 학원가 배치표를 살펴보면 최상위 2% 학생들이 의약계열로 진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생들이 의약계열로의 진학을 동경하고 그곳에서의 성공을 꿈꾸기 때문이다.
UNIST는 이공계 인재들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성공을 꿈꿀 수 있는 모델을 만들고자 한다. 누구보다 앞선 변화와 도전을 일궈내 학생들이 동경하고 따라가고 싶은 길을 열어가는 것이다. 이는 노벨상, 필즈상, 튜어링상을 받을 수 있는 뛰어난 연구 성과로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기업의 창업으로 이어질 것으로 확신한다.
이를 위한 첫 단추로 학사교육 혁신 작업을 펼쳐왔다. 재능 있는 학생들이 최신 분야에 빠르게 관심을 갖고 스스로 학습과 연구를 주도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함이었다.
현행 이공계 교육모델은 50년 전에 정립된 것으로 오랜 시간동안 기초 ‧ 심화 ‧ 응용의 단계별 교육을 이수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야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는 ‘쿵푸형 교육’ 방식이었다. 이는 체계적이지만 실전경험과 문제해결에 있어 속도가 늦고 최신 내용을 습득하기 어렵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또 학생들은 지루한 기초과정에 지쳐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고 지루하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기술혁신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현대사회에서는 ‘쿵푸’가 아닌 ‘격투기형’ 교육이 필요하다. 이는 기본기만 빠르게 익히고 실전경험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문제해결력을 갖춘 인재 육성 방식이다. 기초부터 응용까지 필요한 부분만 추려서 새 과목을 만들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흥미를 느끼고 몰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학사과정에서부터 학생들이 직접 문제를 찾고 해결해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UNIST는 격투기형 교육의 실현을 위해 기초교과목을 재편하고 단기 집중강좌 프로그램 개설, 연구동아리 사업 확대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원하는 분야를 좀 더 빠르게 찾고 성장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만 23개 동아리가 결성됐다.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주제를 스스로 연구하고 글로벌 챌린지에 도전하며 그 성과를 바탕으로 창업도 꿈꾸고 있다. UNIST의 모두는 ‘과학기술계 BTS’로 성장할 씨앗들이다.
변화는 시작됐다. 혁신적 교육과 창업 성과를 일구겠다는 UNIST의 도전에 응원과 격려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 11월에는 울산에서 반도체소재 분야 굴지의 기업을 일궈낸 이준호 덕산그룹 회장께서 300억 원의 발전기금을 쾌척하며 큰 힘을 보탰다. 이 회장께서는 기부 약정식에서 “UNIST가 바라보는 미래가 내가 꿈꿔왔던 미래와 꼭 닮아 가슴이 설렌다”고 기부의 이유를 밝혔다.
이 말 한 마디가 UNIST에서 탄생할 과학기술계 BTS의 등장을 더욱 기다리게 만들었다. 근 미래에 나타날 그 주인공이 더 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길, 더 많은 학생들과 아이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길 바라본다.
이용훈 UNIST 총장
<본 칼럼은 2021년 12월 27일 한국대학신문 온라인판에 ‘[희망 대한민국] ㉖ BTS처럼 빛날 과학기술인재 성공 사례 만들자’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이번 칼럼은 한국대학신문이 창간 32주년을 맞아 진행하는 ‘희망 대한민국’ 캠페인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캠페인은 코로나19, 학령인구 감소 등 어려움에 직면한 대학들을 격려하고 희망의 메시지로 내일로 나아가자는 취지에서 진행된 것으로, 대학 관계자 및 저명인사들이 다음 주자를 지목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