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의 단절이다. 소통단절의 근원은 철저한 위계에 기원하는데, 우리 사회의 위계는 언어에도 고착돼 있다. 바로 존댓말과 반말로 표현되는 두 개의 언어이다. 우리 세대에서 이 존댓말과 반말의 언어 통일을 이루지 않으면, 후손들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남북통일도 좋지만 사회내의 언어통일을 통한 사회통합이 더 중요하다. 반말을 없애서, 모든 사람들이 한 언어로 기본적으로 평등하게 소통을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존댓말·반말 통합을 법제화 하는 것을 주장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지금 자신들의 선배, 동기, 후배라는 범주로 아는 사람들을 구분해보고, 누구와 가장 편하게 소통을 할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나이도 비슷한 동기들일 것이다. 사회의 모든 타인들이 동기들이라면 인간간의 상호작용이 훨씬 직접적이고 효율적이게 된다.
한국인의 머리에는 말을 알아 듣는 2세때부터 철저하게 위에서 아래로의 말과 처세가 있고, 아래에서 위로 하는 말치, 눈치가 있다. 이것이 인생관, 철학, 처세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학교, 직장에서도, 죽을 때까지 위계의 속박에서 끊임없는 갈등을 하고 그것에 기반한 ‘롤플레이’를 한다. 사회에서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고 사는게 아니라 어떤 수직적 계급에서 일종의 배우 역할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된다.
더 나아가 연령과 직급의 높낮이에 따른 반말·존댓말의 심리적 틀은 사회에서 확대 전염되어, 학벌, 재력, 차, 성별, 국적, 인종, 심지어는 얼굴 생김새에까지 위계를 두어서 그 체계에 따라 스스로의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 인종차별이 있다면 인종차별 자체라기보다, 위계에 의한 모든 약자에 대한 차별이 인종에 특화한 모습이 드러난 것도 있다는 뜻이다.
과거 한국 대통령을 헐뜯는 가장 많은 범용적 용어가 소통부재인 것 같다. 어느 대통령도 다른 사람보다 소통능력이 모자라서 국정을 못한 사람은 없다. 오히려 숨통 막히고 억압적인 위계사회에서 소통능력이 그나마 있어서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사회 구성원들이 그런 사람들의 지위를 자의적으로 상정하고, 그 역할과 언행에 대한 자의적 판단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비난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자기와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극단적인 반대행동까지 하게 된다. 그래서 한국에선 신문에 끊임없이 나오는 뉴스거리 중의 하나가 말투로 인한 사건이다.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볼수 있는 범죄 수준의 언어계층화가 아닐까 싶다.
존중과 존경은 스스로 버는 것이지 태어날 때 주어져서는 안 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이다. 반말 존댓말의 위계에 기초한 인간간의 위계는 반 헌법적이고 자의적이다. 지성의 전당이고, 과학정신의 배출소인 대학교에서까지 성인이 된 학생들에게 나이가 좀 많다고 직원이나 교수가 학생들에게 반말을 당연시 한다. 이것은 단순한 사회 관습의 문제가 아니고 정의와 효율, 국가의 미래에 관한 중요한 문제이다.
옛날 괌에서 대한항공이 산중턱에 충돌해 여행객 수백명이 죽었고, 미국에서 그 원인을 조사했다. 비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 중에 기장과 부기장 간 사회의 위계 체제의 벽 때문에 정확한 정보, 비판, 의견을 제 때에 못 전해줘서 사고에 영향을 주었다는 설이 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헌법과 법규, 규정, 원칙, 상식에 맞게 젊은이들이 또박또박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건방지다고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존댓말·반말이 유지되는 한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신바람 나는 소통은 없다.
박종화 UNIST 생명과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5년 9월 1일 경상일보 18면에 ‘[박종화칼럼]언어통일을 통한 사회통합’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