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수도 울산, 그 진면목은 밤늦게 나타난다. 밤에 더 밝게 빛나는, 산업단지를 수놓은 끝없는 불빛들을 마주할 때 비로소 진정한 모습의 울산을 만났다는 느낌을 받는다. 울산에 와서 처음 산업단지를 마주했을 때, 이곳이 바로 우리나라 산업의 중심이구나, 이래서 산업수도라 불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압도적인 산단을 다시 마주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이날 오후 방문한 화학 산단은 밤의 화려한 그곳과는 사뭇 달랐다. 연이어 늘어선 공장 사이엔 퇴근을 기다리는 차량들만 줄지은 황량한 도로 뿐이었다. 머물고 싶은 곳이 아닌 그저 얼른 일을 마치고 떠나야 하는 공간, 과거 산업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마련된 ‘공단’의 모습이었다.
울산의 산업단지는 한 때 사람을 끌어들이는 자석과 같았다. 전국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새로운 성공과 희망으로 도시는 북적였다. 그때의 모습을 되찾을 수는 없을까? 산업단지가 다시 사람들을 꿈꾸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의 산업단지가 아닌, 새로운 개념의 ‘산업캠퍼스’가 모인 ‘산업파크’를 조성해나갈 것을 제안한다. 젊은이들의 꿈이 가득한 캠퍼스와 같은 산업단지를 만들어 누구나 일하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깨끗하게 정비된 부지와 공장, 녹지와 주거지, 상업공간이 한데 어우러진 ‘캠퍼스’ 형태의 산단을 만들자. 퇴근 후에도 머물며 할 것이 많은, 찾아오고 싶은 공간이다. 미래 기술을 바탕으로 창업한 여러 기업들이 이 매력적인 여건의 산업캠퍼스와 결합하도록 해야 한다.
청년들은 과거 형태의 산단에서 일하는 것을 꿈꾸지 않는다. 삭막한 환경에서 젊은이들은 미래를 찾지 않는다. 울산에서 좋은 급여조건을 내걸어도 청년들은 오히려 수도권에서의 팍팍한 생활을 선택한다. 그곳에 일하고 싶은 환경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청년들의 꿈의 기업은 소위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 민족)’로 대표되는 IT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이 꿈의 기업이 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매력적인 근무 환경에 있다. 첨단 사옥에서 자유롭게 근무하며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끽하는 것이다.
구글, MS 등 실리콘벨리의 첨단 기업들도 저마다 캠퍼스를 갖추고 있다. 광활한 녹지 위의 아름다운 사옥들은 최신 기술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근무여건을 제공한다. 누구나 이런 곳에서 일하기를 꿈꾼다.
UNIST는 현재까지 총 132개의 창업기업을 배출했다. 우수한 기술력의 교수진, 창의적 아이디어로 무장한 학생들이 만든 기업들이다. 그러나 상당수가 성장과정에서 울산을 떠나 수도권으로 이전하고 있다. 투자 유치와 인력 채용이 용이하다는 이유다. 특히 울산에서 일할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얼마 전 조재필 교수가 창업한 에스엠랩 공장이 위치한 하이테크밸리 산단에 방문했다. 첨단기술 기업들이 모여 있는 이 산단의 모습은 아쉽게도 기존 산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 많은 창업기업들이 모여 첨단 기술을 꽃피우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하다.
매력적인 산단을 위한 노력은 타 지역에서도 찾을 수 있다. 창원의 스마트 그린 산단의 한 공장에는 스마트 공정을 견학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돼 있다. 아이들이 견학로에서 ‘나중에 저기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만하다고 느꼈다. 대전 대덕 테크노밸리는 산단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공원 녹지와 상업시설을 갖추고 있다.
우리가 준비해야할 산업캠퍼스는 일하고 싶은 공간이어야 한다. 첨단기술과 친환경 공정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다. 울산에 세계 그 어느 곳보다 앞서 있는 그린 스마트 산업파크를 조성하고 누구나 찾아오고 싶은 곳으로 육성한다면, 울산이 세계를 선도하는 산업수도로 다시 우뚝 설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용훈 UNIST 총장
<본 칼럼은 2022년 1월 11일 경상일보 14면에 ‘[특별기고] 울산, 일하고 싶은 ‘산업 캠퍼스’ 만들자!’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