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에서 인간관계만큼 영향을 크게 주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에는 어떤 선생님에게 배우는지, 어떤 친구와 어울리는지가 삶에 영향을 끼칩니다. 부모나 형제를 선택하여 태어날 수 없는 것에 비하면 조금이나마 내가 관계를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성인이 되면 선택권이 더 커지고 영향도 많이 받습니다. 학교 밖에서도 이어지는 친구, 함께 일하는 사람들, 심지어 가족을 꾸릴 배우자도 내가 선택하게 됩니다.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타인을 잘 파악할 수 있다면 여러모로 편리해질 것입니다.
누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운동이나 술자리를 가져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운전습관에서 성격이 나온다는 말도 있죠. 말과 행동을 함께 관찰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 스스로 자신을 잘 모를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지능이 조금 낮은 경계선 지능이라면 일상적인 대화에서 눈에 띄지 않을 것입니다. 단순한 업무라 성실하게 잘 하겠다는 아르바이트생을 믿고 일을 맡겼는데 엉망이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 명언 중에 웨이터에게 무례한 사람을 피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 보여야 하는 대상에게만 친절한 사람이라면 상황이 바뀌었을 때 내가 곤란에 처할 수 있습니다. 학부생일 때 자상하고 멋진 교수님이었는데 대학원생이 되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갑질’로 고생하고 있다면 교수님의 성격이 변한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패턴을 가진 분이었던 것입니다.
반대로 행동은 좋은데 말이 거친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패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는 욕쟁이할머니로 예를 들 수 있겠네요. 말은 그럴 듯하게 하면서 뒤통수를 치는 것 보다는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거친 표현으로 인해 손해가 지속된다는 것도 예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CEO의 미숙한 표현으로 큰 손실을 보기도 하니까요.
어느 상황에서나 내게 좋지 않은 사람이라면 피하기 쉬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맥락에 따라 다르게 행동합니다. 친구일 때는 나를 기꺼이 도와주던 친구가 동업을 시작하면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전 상황에서 잘 맞았다고 다른 상황에서도 잘 맞는 것이 아닙니다. 이성친구일 때, 연인일 때, 배우자일 때가 각각 다른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워집니다. 놀 때 잘 맞았다고 일할 때도 잘 맞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그 사람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행동 패턴을 보이는지 알면 도움이 됩니다.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겠죠. 예를 들어 아픈 아이를 태우고 운전을 하면서 과속을 할지에 대해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다른 결정을 내릴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같은 행동, 즉 과속을 했더라도 거리낌이 없었던 사람과 고민했던 사람은 다른 상황에서는 다른 결정을 할 것입니다.
면접과 같은 짧은 시간에 드러난 모습으로 사람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잠깐은 감추고 싶은 모습을 가릴 수 있으니까요. 뽑아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고 술술 말하지만 쉽게 알 수 있는 회사정보도 찾아보지 않고 온 면접자와 스스로 고민하고 준비한 것을 이야기하는 면접자를 면접관은 다르게 평가합니다. 질문에 대한 단순한 답변이 아니라 그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물으며 관련 경험을 알아보면 조금 더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게 됩니다. 함께 긴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의 살아온 행적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중요한 인물을 뽑을 때 복수의 추천인을 받는 것은 이런 부분을 철저히 검증하려는 노력입니다. 단순히 지식의 유무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왔는지 알면 미래의 결과를 예측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곤란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면 인물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은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고, 타인의 잘못은 그 사람의 인격 자체가 문제라고 비난하는 기본적인 오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위 ‘내로남불’이라고 하죠. 자신의 부족함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현재를 개선하여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지, 아니면 과거의 허물을 감추는 것에만 급급한지 관찰하면 좋습니다.
반대로 공격하는 상황도 관찰해봅시다. 상대에게 혐오 표현을 하며 비난하는 사람은 좋지 않습니다. 사람은 정중한 방법으로도 강력하게 경고할 수 있습니다. 관찰하는 대상의 가까운 사람도 좋은 정보입니다. 특히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던 가족보다는 친구나 배우자 같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관계로부터 그 인물이 추구하는 가치를 판단해볼 수 있습니다.
정신과의사는 환자로부터 ‘이제부터는 달라질 것’이라는 선언을 자주 듣습니다. 술을 끊는 것이든, 우울에서 탈출하려 움직이는 것이든 선언만으로는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목표와 관련된 행동이 쌓여가야 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말과 행동을 잘 읽어 타인을 잘 판단하실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본 칼럼은 경상일보 2022년 2월 18일 19면 ‘[정두영의 마음건강(24)]타인을 잘 평가하는 방법들’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