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K영화, K드라마, K푸드, K뷰티, K방역. 선진국 대한민국을 온 지구에 증명하는 단어다. ‘K’는 영문표기 Korea의 알파벳이니셜이다. Korea는 1000년 전 왕국 ‘고려’가 유럽에 알려진 이름이다. 시간으로나 체제로나 대한민국을 뜻하기보다 지리적 명칭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말로 ‘고려’라 하지 않고 ‘대한민국’이라 부른다. 영문 정식 명칭도 ‘공화국’을 붙여 Republic of Korea다.
대통령 국빈방문을 떠올려본다. 박근혜 대통령 2013년 영국 순방에는 붉은 군복 검정 털모자 근위병과 버킹검 궁전으로 가는 마차, 엘리자베스 여왕이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 스페인 순방에도 마차와 울긋불긋 근위대가 있었다. 스웨덴과 교황청방문도 수백년 전 스타일 근위병과 화려한 궁전이 나왔다. 반면 독일이나 미국, 프랑스의 사열대 복장은 현대적이다. 마차도 없다. 공산권도 마찬가지. 문대통령 러시아 순방, 박대통령 중국 순방에 현대적 스타일 의장대가 나왔다. 옛 군복과 화려한 행사 vs 현대 군복과 모던한 행사는 어떤 기준으로 구분되나?
정체성의 시각화다. 유럽vs미국, 자본주의 vs공산주의도 아니다. 왕국vs공화국이다. 화려한 환대를 하는 나라 -영국, 스페인, 스웨덴, 교황청-는 왕국이다. 국가 원수가 왕이다. 총리가 국정을 운영해도 형식은 왕국이다. 그래서 멋진 옛 군복과 황금마차, 화려한 궁전이 등장한다. 유럽 뿐 아니라, 일본, 태국 및 세계 여러 왕국도 왕실 의전이 있다. 그에 반해 미국, 독일, 프랑스, 중국, 러시아는 공화국이다. 국가원수가 대통령이던 주석이던, 민주적 선출이건 아니건 공화국체제다. 따라서 군복과 의전이 옛 왕국과 다르다. 중국 수천년 역사와 영토를 차지했지만, 중화인민공화국 시진핑주석 의장대가 청나라 군복을 입고, 명나라 풍 깃발을 든 장면은 없다. 프랑스대통령 의장대가 루이 16세 프랑스 왕국의 군복을 입고 부르봉왕가의 깃발을 들 리 없다. 독일의장대가 설마 나치나 빌헬름 황제 시절의 복식일까? 러시아의장대가 제정러시아 군복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이것이 정체성의 시각화다.
이니셜 K로 돌아오자. 해외 정상의 청와대 국빈방문 때, 울긋불긋 조선시대 군관과 왕실 깃발. 봉황문양. 대한민국인가 조선왕국인가? 경복궁, 덕수궁같은 고궁과 한복, 옛 기와집, 초가집, 옛 국악, 옛 음식, 옛 풍습들은 보호할 유물이지, 계승할 대상이 아니다. 조선은 사라진 왕국이다. 일제강점기에 외친 ‘대한 독립 만세’의 ‘대한’조차 ‘조선’이나 ‘대한제국’이 아닌 ‘대한민국’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조선의 유물’을 ‘전통’이라 착각하는 세태가 판친다. 아직도 한국적인 것으로 황토색을, 팔각정 스타일 시설을, 울긋불긋 정원을 논한다. 한국이란 주제엔 늘 한복과 단청이다. 조선시대 대한민국. 디자인 전공인 필자는 머리가 아프다.
형태와 색상은 정체성을 표현하는 강력한 시각적 도구다. 세계가 열광하는 이니셜 K는 모두 ‘대한민국’의 콘텐츠지 ‘조선왕국’의 것이 아니다. BTS의 패션, 노래, 영화 미나리와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게임, 프라이드 치킨이나 화장품 어디에도 조선의 것은 1도 없다. 한복이 예쁘고, 기와집이 좋다고 21세기에 널리 쓰길 원하는 것은 편협한 인식이다. 고춧가루 한 톨 없는 밍밍한 조선시대 음식은 현대한국인도 못 즐긴다. 생각해보시라. 현대 유럽의 누가 우스꽝스런 중세 옷을 입고 중세 음식을 먹고 중세 건축물을 새로 짓는가? 아웃사이트를 통해 더 잘 나타난 글로벌 대한민국은 이미 문화, 과학, 기술, 공학과 산업까지 잘났다.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전통은 우리가 만든 새로움이다. 대통령이 왕이 아니듯 이니셜 K는 이씨 조선이 아니다. 글로벌 대한민국이다.
정연우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본 칼럼은 2022년 2월 25일 경상일보 15면 ‘[정연우칼럼-아웃사이트(2)]이니셜 K의 정체성’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