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의 침방울을 맞아가며 열심히 공부한다는 말이 있다. COVID-19 시대에는 큰일 날 소리다. 재채기나 기침은 물론 일상적인 대화만 해도 침방울이 입에서 튀어나올 수 있다. 이 침방울들은 너무 작아서, 또는 너무 빨리 움직여서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긴 대화를 마치고 안경을 닦아본 사람들은 침방울이 착륙한 흔적을 보았을 것이다. 대부분 물로 이뤄진 침방울은 주인의 입에 남은 음식 찌꺼기나 DNA는 물론 바이러스까지 실어나를 수 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과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인류가 사용하는 언어의 95% 이상에 포함된 ‘ㅍ’나 ‘ㅂ’ 같은 소리를 낼 때, 끈적한 침은 입술과 입술 또는 입술과 치아 사이에 액체막이나 끈을 만든다. 이 액체 끈은 액체가 서로 뭉치고자 하는 표면 장력이라 하는 힘 때문에, 불과 1,000분의 1초라는 찰나의 시간에 작은 방울들로 쪼개진다. 머리카락 굵기의 백 분의 일 정도부터 0.5 밀리미터까지 다양한 지름을 가지는 수천개의 방울이 생겨난 것이다. 이제 이 방울들은 날숨을 타고 입 밖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비행하는 방울들은 중력 때문에 바로 낙하한다. 밀리미터 크기의 무거운 방울은 다행히 얼마 가지 못하고 어딘가에 착륙한다. 하지만, 수 마이크론의 작은 방울들은 날숨과 같은 공기의 흐름을 타고 수 초 동안 1~2미터 정도는 거뜬히 날아갈 수 있다. 분무기에서 발사된 물방울을 밝은 불빛 아래에서 관찰하면 이 비행을 볼 수 있다.
방울은 날아가는 동시에 증발한다. 증발이란 침방울 속의 물 분자들이 공기 중으로 뛰쳐나가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공기 중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물 분자들이 침방울 속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공기 중에 존재하는 물 분자가 얼마나 많은지를 알려주는 값이 바로 습도다. 습도가 낮은 건조한 날에는 방울을 떠나는 물 분자가 들어오는 분자보다 많다. 방울은 금방 말라 없어져 먼지가 된다. 하지만, 비 오는 날과 같이 습한 날에는 방울로 유입되는 물 분자들 덕분에 알짜 증발이 작아져, 방울의 여행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이 침방울의 도착지가 내 콧구멍이나 입속이라면 그리 유쾌하지 않다. 방울이 바이러스를 싣고 있다면 심각한 일이다. 마스크 착용은 이 불쾌한 여행을 막는 데 효과적이다. 보건용 KF94 마스크를 예로 들자면, 머리카락 굵기의 250분의 1 정도인 0.4 마이크론 크기의 입자를 94% 이상 차단한다. 이 마스크로 0.1 마이크론 정도의 크기인 코로나바이러스 자체를 완벽하게 막기는 어렵다. 하지만 마스크 착용은 바이러스를 싣고 있을 수도 있는 내 침방울을 내보내거나 또 타인의 날아온 침방울을 들이마실 확률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마스크를 단지 촘촘한 천이나 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큰 입자를 걸러내는 겉감 뒤에는 가느다란 플라스틱 섬유들이 촘촘하게 그물처럼 짜인 필터가 버티고 있다. 이 섬유들은 정전기를 띠도록 만들어져 있다. 플라스틱 쪽으로 우리의 머리카락을 끌어당기고 스웨터를 벗을 때 찌릿함을 주는 그 정전기 말이다. 정전기를 띤 섬유는 미세먼지나 침방울을 끌어당겨 섬유에 붙게 하고, 이로써 오염물질의 통과를 줄여준다. 하지만 물에 젖은 필터는 정전기력을 잃어버리고, 잘못된 마스크 착용은 방울에 뒷문을 열어주는 꼴이니 방심은 금물이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한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침방울 좀 맞아도 괜찮으니까 마스크 없이 신나게 공부할 수 있는 때가 다시 오면 좋겠다. 다시 올 것이다.
정준우 UNIST 물리학과 교수
<본 칼럼은 2022년 2월 24일 울산매일 19면 ‘[매일시론] 침방울의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