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 한 바닷가 건축물을 디자인 중이다. 콘크리트와 유리로 전면은 층마다 방향을 틀고, 측면은 간결하게 입면을 구성했다. 지자체의 건축심의에서 지적받은 부분이 두가지. 하나는 측벽이 너무 단조로워 입체적인 돌출면을 만들라는 것. 다른 하나는 옥상 조경이 너무 단순하니 식재와 데크, 화단 그래픽 등 레이아웃 요소를 다양하게 넣으라고 했다. 건축사와 협의를 통해 설계를 소폭 변경해서 심의를 통과했다. 필자의 눈엔 개악이다.
울산의 건축관련 위원회에서 심의도 맡고 있다. 디자인분야 위원으로 참 어려운 상황이 종종 있다. 주상복합 건물 색이 튀거나 어두우면, 명·채도를 조절해 주변과 어울리게 하자는 의견을 낸다. 늘 맞닥뜨리는 반대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라서 안된다” “입주민들이 결정한 안이라서 안된다”다. 색감 좋고 개성있는데, 왜 흐릿하게, 눈에 안띄게 하냐고 한다. 조경도 단일 식재는 심심하단다. 형형색색의 꽃나무가 골고루 섞어야 좋은 디자인이란다.
바야흐로 봄. 서울 대로변 가로수 가지치기가 논란이다. 벌목 수준으로 큰 가지들을 잘라내니 마치 죽은 나무 같다. 그런데 이게 구청의 연례 이벤트라 한다. 여름에 무성한 가지로 간판이 잘 안보여 잘라달라는 민원이 빗발친단다. 안전 확보 핑계로 하나 건너 하나씩 나무를 뽑거나, 키작은 침엽수를 심는 지자체도 등장했다. 누구를 위한 시정인가?
세상 예쁜 도시라 칭찬하는 파리에 가보면 건물들이 죄다 비슷하다. 밝은 회색벽과 진회색 지붕으로 뒤덮인 도시. 튀는 건축이 없다. 보통 눈썰미에게 파리 시내 여러 장소 사진을 보여주면, 어디가 어딘 지 못 찾는다. 그런데 예쁘고 좋은 디자인 도시라고 난리다. 파리의 가로수는 우거지다 못해 울창하다. 숲인지 도시인지 모를 정도로 나무들의 키는 수십m다. 간판 가린다고 가로수를 잘랐다는 소식은 못들어봤다. 심지어 간판조차 작고 단순하다. 샹제리제조차 화려한 채널조명은 손에 꼽는다. 고전적 상태 그대로 수십 수백년째다. 우리 기준으로 밋밋하고 개성없는 도시, 가로수가 울창해서 간판이 안보이는 도시인데 관광객 세계 1위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좋은 디자인이 무엇인가. 우리에겐 예쁘고 남달라 보이면 좋은 디자인이라는 인식이 주류다. 맞다. 어떤 디자이너가 자기 안을 안예쁘고 개성없게 만들까? 예쁘고 돋보이는 것이 굿디자인 맞다. 다만 우리에게는 없고 파리에는 있는 확실한 하나는, ‘Balance: 조화’다.
우리는 간판도 건축물도 거리도, 심지어 도로 표지판도 경쟁한다. 덕분에, 튀는 이미지들의 아귀다툼이 우리 특징이 되었다. 고강도의 시각적 번잡함은 피로를 느끼게 한다. 울긋불긋 휘갈겨 쓴 고깃집 간판들이 즐비한 거리를 ‘활기차다’할 지언정 ‘예쁘다’ ‘오래 머물고 싶다’고 하지는 않는다. 옆집보다 더 튀게, 더 세게, 더 많은 이미지를 심겠다는 욕심이 조화없는 ‘헬지옥’을 만든 셈이다.
예로부터 유럽, 북미 즉 ‘서양’은 개인 중심, 우리는 공동체 중심이라 배웠는데 실상은 반대다. 간결한 거리와 간판, 울창한 도심속 숲은 오히려 서양이 공동체를 중시한다는 증거다. 반대로 ‘내가 더 튀겠다’ ‘내가 이기겠다’는 이기심으로 잔뜩 성난 거리는 우리가 개인중심적이라는 증거다. 조화를 중시하는 높은 수준의 미의식은 서로 존중하는 공동체를 인증하는 틀이다. 그러니 적어도 디자인에서, 오히려 우리가 더 개인중심적이다.
멋진 인테리어는 제품과 가구의 색상과 형태가 서로 어울리는 조화에서 나온다. 아무리 명품브랜드로 도배를 해도 감 떨어지는 사람의 공간은 촌스럽다. 형형색색 도어와 디스플레이 달린 최신 냉장고, 울긋불긋한 식탁보, 금칠 문양 찻잔과 그릇, 번쩍이는 주전자, 파스텔톤 주방 소물가전, 대리석 식탁, 특이한 의자가 놓인 공간은 좋은 디자인이 못된다. 세련된 인테리어, 옷 잘입는 사람, 예쁜 거리, 아름다운 도시의 핵심은 밸런스-조화다. 물질이 아닌 개념이다. 우리에게 절실한 조화는 나와 타인을 함께 대하는 생각, 공동체에 대한 마음이다. 아웃사이트 세번째. 밸런스.
정연우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본 칼럼은 2022년 3월 22일 경상일보 15면 ‘[정연우칼럼 아웃사이트(3)]밸런스:파리에는 있고 우리에겐 없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