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사이가 좋지 않을 때 물과 기름 같다는 비유를 사용한다.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는다. 물과 식용유를 병에 넣고 열심히 흔들면 잠시 섞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내 물과 기름층으로 다시 분리된다. 손에 묻은 기름때가 물만으로 잘 씻기지 않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이 현상은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들이 유유상종 즉, 같거나 비슷한 것끼리 서로 어울리기 때문이다. 물 분자는 물 분자끼리 기름 분자는 기름 분자와 함께 있을 때 더 안정적인 상태로 존재한다. 물속의 물 분자는 동족에게 둘러싸여 있어 행복하지만, 기름 또는 공기 같은 다른 물질과 맞닿는 계면에 있는 물 분자는 상대적으로 불안정하다. 물질은 계면에 있는 불행한 분자 수를 줄이기 위해 계면의 넓이를 최소화하려고 한다. 이 힘이 표면 장력이고, 물방울이 동그란 이유이다.
세제는 마법처럼 물과 기름을 섞이게 한다. 세제를 한 방울 떨어뜨린 물에 기름을 넣고 흔들어주면 물과 기름이 섞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비누를 쓰면 손에 묻은 기름때도 쉽게 없앨 수 있다. 하지만 소금이 물에 녹는 것처럼, 기름이 물에 녹은 것은 아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무수히 많은 공 모양의 기름방울이 물속에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제나 비누처럼 사이가 좋지 않은 두 물질을 달래서 넓은 계면을 보다 오래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물질을 계면활성제라고 부른다.
계면활성제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야누스처럼 두 개의 얼굴을 가진다. 머리카락 굵기의 수만분의 일 크기에 불과한 비누 분자에는 물을 좋아하는 부분과 기름을 좋아하는 부분이 함께 존재한다. 이 분자가 물과 기름 사이에 끼어들면 물은 계면활성제의 친수성 부분을, 기름은 친유성 부분을 보게 된다. 물과 기름이 직접 만날 일이 적어지기에 더 안정적인 계면이 만들어진다. 계면활성제를 양쪽과 모두 친하다는 뜻으로 양친성 분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세입자와 임대인 사이에 중개사가 끼어든 꼴이다.
계면활성제는 우리 삶에 유용한 것을 넘어서서 필수적이다. 화학적으로 합성된 계면활성제는 화장품에 들어가 물과 기름이 고루 섞인 에멀젼 형태를 만들고, 달걀노른자에 들어있는 레시틴이라는 천연 계면활성제는 식초와 식용유를 섞이게 해 마요네즈를 만들어낸다. 공기와 맞닿는 면적을 최대한 넓혀야 하는 우리 몸속의 폐는, 인지질이라는 분자로 구성된 폐 표면활성제를 이용해 넓은 폐포 면적을 유지하고 호흡을 원활히 한다. 폐 표면활성제가 부족해 신생아가 호흡곤란 증후군을 겪는 일도 있고, 덴마크 코펜하겐대학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COVID-19에 의한 급성호흡곤란증후군에서도 폐 표면활성제 부족 현상이 관찰됐다고 한다. 사실, 생명체의 기본단위인 세포를 둘러싼 세포막이 양친성 분자인 인지질로 만들어져 있다. 계면활성제가 없으면 세포도 없고 우리도 없다.
전례 없이 복잡다단해진 우리 사회 집단 간 갈등이 마치 물과 기름 같다. 전 세계에서 인종, 종교, 국가 간의 갈등이 무고한 사람들의 고통과 희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과 기름도 섞이게 할 수 있고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계면활성제처럼, 정치인과 국제사회가 사회통합과 평화를 향한 중재를 위해 보다 노력하길 간절히 기원해본다. 아울러, 대한민국 국민이자 지구인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함께 고민해 보자.
정준우 UNIST 물리학과 교수
<본 칼럼은 2022년 4월 8일 울산매일신문 15면에 ‘[매일시론] 계면활성제가 필요하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