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멋진 모델을 디자인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보고 싶습니다.” 거구의 회장이 글로벌 디자인 총 책임자에게 물었다. 디자인 총책임자 옆에 서 있던 디자인센터장이 뒤쪽 한 사람을 손짓해서 불러낸다. “이 친구가 메인 디자이너 입니다. 입사한지 1년도 안 된 젊은 친구입니다.” “미스터 정, 릭 웨고너 회장님께 인사하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회장님.” 꾸벅 인사하는 사람에게 회장이 말했다. “이런 멋진 차를 디자인해줘서 고맙습니다. 우리 GM은 당신처럼 젊은 디자이너들을 더욱 많이 키워내야 합니다.”
2006년 이른 봄날 GM의 한 디자인센터 야외 품평장에서 사원급 디자이너였던 필자는 글로벌 GM의 회장에게 칭찬을 받았다. 3년 후 출시될 쉐보레 크루즈의 메인 디자인을 잘 했다는 공로였다. 실로 피땀을 쏟은 결과물이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거의 1년. 아이디어 스케치 단계, 뽑힌 몇 개의 스케치로 만든 스케일 모델 단계, 2개의 실제 차 사이즈 모델까지 단계마다 수많은 디자이너들과 치열한 경쟁을 거친다. 그리고 2개의 모델 중에서 최종 1개가 선정되면 비로소 실제 자동차로 개발된다.
필자가 느닷없는 자동차디자인센터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최종 선정에 관한 아웃사이트 때문이다. 그런데 최종 선정은 사실 GM회장의 디자인센터 방문 하루 전에 미리 이루어졌다. 디자인 총책임자 단독의 권한으로 디자인을 선정했다. 그리고 다음날 회장에게 선정한 디자인을 보여주고 확인을 받는 형식이었다.
“정말 멋진 모델이군요. 라인이 정말 기가 막혀요. 빨리 양산되어 나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다들 고생 많았어요.” 폭스바겐그룹 피이예 회장이 주변 사람들, 디자인센터장과 디자이너들을 치하했다. 2009년 벤틀리의 차기 모델 디자인을 승인받는 자리였다. 마찬가지로 모델 디자인 선정은 전날 디자인조직의 권한으로 이루어졌다.
“모델 A의 경영진 평가 점수는 몇점이고, 모델 B는 몇점입니다.” “모델A는 어떤 어떤 점이 좋고요, 모델 B는 어떤 어떤 점이 좋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연구개발 본부는 어떤 안을 선호합니까?” “회장님은 어떤 안이 마음에 드십니까?” 디자인 총책임자와 디자이너들 모두 꿔다 논 보리자루처럼 품평장 한 켠에 우두커니 서서 회장의 결정을 기다릴 뿐 아무런 권한이 없다. “모델 A로 하지.” 오직 회장님의 판단으로 끝을 맺는다. 10여년 전 대한민국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디자인 품평장 모습이다.
전문성을 인정하는가, 얼마나 인정하는가, 전문가를 존중하는가, 신뢰하는가. 디자인에 대해 우리는 취향의 문제라 치부하며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기업이나 브랜드의 로고-서체는 물론이요, 간판이나 건축물의 외벽, 표지판, 도시 인프라와 시설물의 디자인 선정까지도 내 방 도배 벽지 색상 고르듯 쉬이 결정한다. 즉, 전문성이 결여된 결정권자가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고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정책을 집행하는 꼴이다.
전문가 비전문가 섞어 놓은 자리에서 무조건 다수결로 디자인 안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단발적이고 즉흥적인 결정은 결국 엉망진창 결과물을 만든다.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면 도로변에 포항 이북부터 다양한 온갖 대게 시설물과 조형물들이 나타난다. 울산의 고래, 기장 멸치나 미역 기반의 가로등, 난간, 보도 블럭, 벽화, 다리나 조형물은 애교 수준이다. 지방 특산물마다 존재하는 각종 마스코트는 어떤가? 어찌 그리 서로 눈코입까지 닮았을까. 지자체 마스코트 스타일이야 말로 디자인 비전문가 공무원들의 취향과 일부 전문가위원회의 다수결, 시키는 대로 만들어주는 영혼 없는 디자인 용역사가 만든 합작품이다.
경관과 디자인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인정하고 전문가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 GM이나 벤틀리가 수십년 전부터 그래왔듯 디자인에 관한 개발과 결정은 디자인 부서에 일임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 현대자동차그룹의 디자인이 우수한 이유는 디자인 조직에 폭넓은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고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치다. 경제, 과학, 기술, 산업, 문화, 예술과 스포츠까지 각 분야의 전문성과 전문가를 인정하고 대우함으로써 사회가 발전한다. 참 또 하나, 유사 전문가, 유사 전문성도 잘 가려내야 한다. 대분야가 같다고 전문분야를 넘어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대의 스포츠 스타 축구선수 손흥민이 여느 프로 골퍼보다 골프를 잘 할까?
정연우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본 칼럼은 2022년 5월 17일 경상일보 15면 ‘[정연우칼럼 아웃사이트(5)]전문가와 전문성의 존중’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