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핵폭탄도, 거대한 태양도 아닌, 인간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 우주는 정보로 이루어져 있고, 그 정보처리의 정점이 인간이 하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우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보이다. 피부로 느껴지는 시공간 물리적 우주는 그런 정보의 가상화된 가짜다. 요즘으로 치면 ‘메타버스’다. 생각 중에서 최고의 생각이 자만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인 ‘겸비’이다. 오늘은, ‘과학적 겸비’(scientific humility)가 무엇인지 소개한다. 왜냐하면, 과학적 겸비가 대영제국을 건설했고, 현대문명을 건축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하게 된다.
우주의 모든 물리적 가상 세계를 이루는 요소의 궁극점은 조그만 스위치들(switch)이다. 무한대의 스위치들이 모여서, 이 우주를 형성하고 있고, 우주의 탄생도 이런 정보의 발현에서 시작되었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우주의 기원은 정보처리 스위치가 연쇄적으로 ‘폭발적 발현’을 한 것이다. 무한대로 작았던, 완벽한 점이었던 우주가 대폭발의 결과로, 모든 정보덩어리들이 연쇄적으로 정보처리를 하면서 진화해오고 있고, 그 진화의 꼭대기에 인간이 있다.
인간이 사용하는 세상의 모든 정보는 다섯 종류다. 가장 밑에 신호(signal)가 있고, 그다음에 데이터 직관 정보 지식으로 복잡도가 올라간다. 지식의 최종점은 다시 신호가 된다. 그래서, 정보의 단계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돌아가는 환형 구조를 가진다. 인간은 지식을 통해 최종 판단을 한다.
이런 정보처리 과정은 물리학적으로 자유도(entropy)를 낮추는 방향인, ‘정리를 잘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방안에 아이들이 물건을 어질러 놓으면, 엄마가 정리를 하는 것과 같다. 이런 정리작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생명’ 현상이다. 생명현상은 전 우주의 정보처리에서 유일하게, 어질러진 상태를 거꾸로 돌린다.
인간으로 대표되는 생명현상은 정보처리를, 컴퓨터를 써서 자동화, 체계화하고, 최고로 잘 정리하는 것인데, 인생사에서 모든 판단들을 잘할 수 있는가의 모든 과정이 한마디로 ‘생각’이다. 생각만큼 중요한 작용은 이 우주의 어디에도 없다. 생각은 전 우주적으로는 정말로 희한한, 이상한, 멋진, 강력한 것이다.
그러면 박테리아나, 개나 소나, 고양이도 생각을 하나? 당연하다. 모든 생명체의 생각 작용은 단지 그 정도 차이다. 바퀴벌레도 생각하며, 철학이 있다. 나름의 생존 철학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 박테리아 바퀴벌레가 하는 다양한 생각(정보처리)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인간은 미래를 예측하고, 달에 로켓을 쏘고, 자동차 탄소배출을 억제하고, 인구를 스스로 조절한다. 이런 인간 생각의 가장 아름답고, 정제되고, 효율적인 것이 바로 ‘과학’이다. 과학적 생각을 한다는 것은, 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력한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과학은 객관적인 데이터 수집, 정보의 검정과 정리를 하고, 수학적 논리를 적용하여, 최적화된 답을 도출한다. 인간의 모든 행위 중 가장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행위가 과학적 사변이다.
과학사상 정립 이전의 많은 잡학들과, 과학이 구분되는 제일 특별한 것이, ‘독립적’ ‘비판적’ 생각이다. 과학적 생각을 하는 원동력은 끊임없는 의심 질문 추궁이고, 이 비판적 에너지에 기반한 철저하게 독립적인 판단들이 과학의 뼈대다. 가장 과학적인 생각은, 존재 인식의 주체인 과학자 자신의 생각도 철저히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과학자는 한없이 스스로의 결점과, 오류에 민감하다. 스스로에게 비판적인 것이다. 자신이 쌓아 올린 학문적 업적은 과학자들에겐, 한순간에 부정, 비판되는 것이 당연한 것들이다. 이런 과학적인 비판적 태도와 사고의 발현이 한마디로, ‘과학적 겸비’이다. 겸비는, 겸허나 겸양을 넘어, 스스로에게도 한없이 비판적인 것을 뜻한다.
지능 높은 사람들의 공통점이,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는 것이다. 겸손해서가 아니고, 도덕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자신의 오류와 허점들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자연히 겸비해질 수밖에 없다. 과학적 겸비는 인류 지성의 최고 최강의 상태이다. 대한민국과 인류의 미래는 젊은이들의 과학적 겸비에 달려있다.
박종화 클리노믹스 기술이사·유니스트 교수
<본 칼럼은 2022년 5월 24일 국제신문 22면 ‘[과학에세이] 과학적 겸비, 대한민국의 미래 정신’ 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