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당연한 권리를 빼앗겼다고 느끼면 화가 납니다. 오이를 잘 받아먹던 실험실의 원숭이는 옆 우리의 원숭이에게 포도를 주는 것을 보자 화가 나서 소리를 지릅니다. 원숭이에게 다가가 다시 오이를 주면 아까는 맛있게 먹었던 오이를 집어 던지며 철창을 흔듭니다. 나도 똑같이 포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는 것이죠. 옆 원숭이가 힘든 실험을 마치고 보상을 받은 것인지, 건강 상태 때문에 다른 먹이를 먹고 있는 것인지 원숭이 수준에서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인간 사회에서도 비슷한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배달앱 리뷰에 욕을 하는 것은 애교 수준입니다. 응급실에 위중한 환자는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 지경이라 말하기도 힘든데 자신이 더 급하다며 의료진을 위협하는 사람은 목소리도 크고 물건을 집어 던질 힘도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악플로 고소를 당할 수도 있고, 자신의 치료가 더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실망할 일과 화를 낼 일을 구분해야 합니다. 그 식당의 메뉴가 다른 사람 입맛에는 잘 맞았을 수도 있습니다. 맛이 없다면 찾는 사람이 없게 되겠죠. 내 취향에 안 맞으면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소금을 줄여 덜 짜게 해달라는 정도의 간단한 것이면 가능한지 물어보거나, 다른 메뉴를 시키거나, 다른 식당에 가면 됩니다. 그런데 허위광고나 식품위생법 위반과 같은 ‘당연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에는 정당한 방법으로 화를 내야 합니다. 공동체에 반복되면 좋지 않은 일을 위해 화를 내준 것은 오히려 칭찬받을 일입니다. 정당한 화를 낼 때도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직폭력배들의 패싸움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낫습니다. 정의만 생각하고 혼자 나서면 위험합니다.
자신이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면 화가 나고 속이 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을 대처하는 것은 조금 신중해야 합니다. 적절한 요구가 어떤 것일지 현명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힘들다고 무리한 요구를 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나는 또 속이 상하게 됩니다. 말실수를 한 상대로부터 받은 상처가 크다고 강력범죄 수준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부작용이 너무 커져 자신도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조직이나 공동체에서도 비슷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는 삼남매의 직장생활이 나옵니다. 첫째의 회사에서는 자신에게만 복권을 나눠주지 않은 바람둥이로 의심받는 상사가 등장합니다. 첫째는 그가 마음에 안 든다고 툴툴대지만 불만을 얘기하고 사과를 받습니다. 나중에는 조언도 얻는 친한 사이가 됩니다. 둘째는 모두가 싫어하는 이기적인 선배의 옆자리를 써야 했습니다. 동료들에게 뒷얘기도 하고 응원도 받습니다. 상사마저도 이해하고 응원해줍니다. 셋째가 안타깝습니다. 그녀는 실력도 부족한데 인격모독을 일삼는 상사와 일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지만 내색하지 않고 참습니다. 그 상황에서 걱정해주는 척 하며 자신을 이용했던 동료에게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핸드백을 던지고 싸웁니다. 합의금을 주느라 대출도 받고 직장에서도 불리해집니다.
여러 사람이 있으면 나와 잘 맞는 사람도 있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 힘든 부분을 표현하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힘들게 하는 사람은 그대로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지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화를 낼만한 부당한 상황에 있을 때는 정당하게 싸워 나가야 합니다. 증거를 모아서 피해 정도에 따라 절차에 맞는 합당한 요구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도 보호하고 가해자들의 행동을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 주변이 모두 선하고 유능한 사람들로만 채워져 있기를 기대합니다. 현실은 원래 불완전합니다. 나 자신이 불완전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꿔달라는 친구, 동료, 지인이 좋은 사람이고 갚을 능력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이걸 못 갚아도 괜찮겠다 싶은 정도를 생각해서 꿔줄 수도 있습니다.
기대와 달리 불공정한 상황을 겪게 된다면 ‘정당하게’ 화를 내셔야 합니다. 스스로 속상함을 달래준 다음 후회하지 않을 방법을 선택합니다. 직접 요청을 할 수도 있고, 절차를 따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예측도 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더 현명한 계획도 세울 수 있습니다. 감정을 잘 다스려서 더 좋은 행동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본 칼럼은 경상일보 2022년 6월 17일 15면 ‘[정두영의 마음건강(28)]타인의 완벽을 기대하다 화가 난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