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노벨생리의학상은 한마디로 ‘게놈’ 상이다. 수상자 스반테 파보 박사는 에스토니아 출신 과학자이다. 생화학과 분자생물학을 한 전형적인 게놈 학자이다. 많은 사람이 왜 노벨생리의학상을 파보 박사에게 줬는지 처음에는 놀랐을 것이다. 파보 박사는 고대 게놈을 연구한 인류학자이기 때문이다. 게놈 학자란 뜻은, 파보 박사가 DNA(게놈)를 중심으로 인류학 고고학 바이러스 코비드19 면역학 등을 계속 연구해왔다는 뜻이다.
생물 화학 의학 관련 노벨상 중에서 게놈과 관련된 분야가 가장 많은 상을 가져갔을 것이다. 앞으로도 많은 생리의학상, 화학상들이 게놈 관련해 나올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물질을 한 개만 뽑으라면 게놈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게놈은 무엇인가? 게놈은 DNA RNA 심지어는 컴퓨터의 운영시스템까지도 넣을 수 있는 거대한 ‘정보처리 설계도’이다. 나와 가족 민족 인류 동식물 전지구 생태계를 이루는 물질 중에, 이것 만큼 강력하게 모든 것을 연결시키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밑바닥엔, 한국사회도, 인류도, 코로나바이러스도, 게놈을 통해서 정보가 처리되고 유지된다. 게놈은 우리 존재 자체를 정의할 수 있기에, 게놈을 연구하면, 인류사회를 이해하는 새로운 철학이 생긴다. 2022년 게놈 노벨상은, 그 응용 분야가 고고학 및 인류학이지만, 그 기술적 토대는 결국 게놈분석 과학기술에서 나온 것이다.
파보 박사가 창시한 고게놈학은 인류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데,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파보 박사는 2000년대 중반에 초대를 받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도 DNA를 고대 뼈에서 뽑아내는 기술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 교잡했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그전에는, 우리 몸속에 많은 양의 네안데르탈인의 유전 변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파보 박사는 가장 깨끗하게 고대인 게놈을 뽑아내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고, 한국인의 고대인 게놈을 분석하는데 필자도 파보 박사의 기술이 필요했었다.
2010년께 파보 박사가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을 세계 최초로 분석하고, 현생인류와 비교하자, 네안데르탈인에게만 있는 유전변이가 우리에게도 상당수 있음이 밝혀졌다. 인류 진화의 역사가 바뀌게 된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이란, 독일 네안데르탈 계곡에서 나온 인류와는 관련이 적은 원시인을 말하는데, 여러분들의 몸속에는 네안데르탈인뿐만 아니라, 데니소바인이라는 또 다른 원시인의 게놈도 들어가 있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다른 원시인의 게놈 또한 들어가 있다. 앞으로 더 많은 고대 게놈들이 분석되면, 새로운 우리의 조상들이 알려지게 될 것이다. 파보 박사의 게놈분석 기술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수천 개의 다른 고대인 게놈과, 고대 동물 게놈의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7700년 전의 러시아 극동의 악마문 동굴에서 나온 뼛속의 게놈을 분석하여, 한국인 기원에 대한 기록을 다시 쓰고 있고, 최근에는 1700년 전 가야시대 고대인들의 게놈분석을 통해서, 한국인의 기원과, 수천 년 전의 이동에 대한 가장 과학적인 해석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인간이 역사책에 기록을 남기면, 주관적일 수 있다. 그러나, 뼈를 통해 땅속에 묻힌 게놈은 인류 역사에 대한 객관적 과학적 정보를 수십만 년이 지나도 제공한다. 이런 시각에선, 박물관의 옛날 사람 뼈는 그 자체 보다는 그 안의 DNA 정보가 핵심일 수 있다.
수천 년 전, 사랑하는 가족들이 죽으면 너무나 슬퍼, 정성스럽게 장례를 치르고 땅속에 고이 묻었다. 현대 과학 기술은 그런 소중한 마음을 현실화했다. 과학은 묻힌 사람들의 게놈에서, 영원한 게놈 정보를 찾아내어, 그 당시 사람들의 생김새까지 복원을 하고, 그 사람들이 어떤 삶을 어떤 사람들과 같이 살았는지를 알게 한다. 우리가 죽으면 삶을 마감하지만, 우리의 게놈 정보는 영원히 컴퓨터 속에 남아, 우리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말해 줄 수 있다. 이런 게놈 기술에 노벨상을 준 이유는, 단순한 기술 가치를 넘어서, 우리의 삶과, 존재와 진화 자체에 대한 큰 이해를 줬기 때문이다.
박종화 클리노믹스 기술이사·유니스트 교수
<본 칼럼은 2022년 11월 1일 국제신문 22면 ‘[과학에세이] 2022 노벨상의 의미: 고고학도 게놈과 함께’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