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합리적 소비자라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알게 모르게 남의 행동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백화점 특설 매장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옷을 고르는 광경을 보다가 왠지 나도 안 사면 손해일 것 같아 물건을 사본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반대로 특정 브랜드나 디자인의 옷이 마음에 들어도 주변에서 너무 흔하면 구매 욕구가 떨어지는 일도 종종 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수요에 내 수요가 좌우되는 현상을 경제학에서 네트워크 효과라고 부른다.
그런데 네트워크 효과는 제품이나 상황에 따라 판이하게 나타난다. 네트워크 효과가 양(+)으로 작용할 때, 즉 남들이 사면 나도 사고 싶어질 때 이를 밴드웨건 효과라고 한다. 꽤 오래 전에 고등학생들 사이에 대유행하며 ‘등골 브레이커’라는 명성을 얻었던 모 브랜드 패딩은 밴드웨건 효과의 위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메신저나 소셜미디어 역시 밴드웨건 효과가 크게 작용하는 산업이다.
반대로 네트워크 효과가 음(-)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물건은 가치 없게 느껴져 안 사게 되는 현상이다. 이를 스놉(snob·속물) 효과라고 한다. 명품 업체들이 재고가 남아도 세일을 하지 않고 전량 폐기 처분하는 것도 제품의 희소성을 유지해 스놉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다.
일반 기업들도 수량이 제한된 한정판 제품을 통해 스놉 효과를 노린다. 앱솔루트 보드카는 유명 예술가와 합작해 종종 한정판을 출시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나이키나 삼성전자, 아모레퍼시픽 같은 기업들도 유명인이나 디자이너와 협력한 한정판 제품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미국의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수프림도 아이템당 몇 백 개만 만드는 한정판 전략으로 유명하다. 지난 2018년엔 뉴욕포스트 1면에 수프림 로고를 싣자 삽시간에 신문이 가판대에서 동나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그림이나 동영상을 디지털화한 NFT(대체 불가능 토큰)가 한때 열풍을 일으킨 것도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디지털 원본’이라는 점을 내세워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허영심을 자극하는 스놉 효과도 아무나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제품의 품질과 희소성, 충성 고객이 뒷받침돼야만 한다. 약 20년 전 우리나라의 어느 장사꾼은 달랑 6년 된 시계를 200년 된 유럽 왕실의 명품으로 둔갑시킨 뒤 연예인 협찬과 “이거 우리나라에 단 두 개밖에 없는 시계예요”같은 얄팍한 PPL을 앞세워 팔아 먹으려다 발각돼 쇠고랑을 찼다. 최근엔 멕시코의 한 사업가가 유명 화가 프리다 칼로의 1000만달러짜리 그림을 대중 앞에서 불태우는 무모한 짓을 벌였다. 자신이 만들어 파는 한정판 NFT의 희소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쇼였다. 하지만 NFT는 거의 팔리지 않았고, 이 사업가는 문화재를 훼손한 혐의로 경찰 수사까지 받는다고 한다. 대중의 속물근성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속물근성이 도를 넘으면 오히려 화를 부르는 법이다.
<본 칼럼은 2022년 11월 18일 조선일보 B10면 ‘로고 하나 박았을 뿐인데… ‘그 신문’은 왜 품절됐을까’ 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