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ST에서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곳은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다. 최근 세계적인 디자인 석학인 네덜란드 델프트공과대학교에서 헨리크리스티앙 교수가 학부장으로 부임했다. 전례없는 혁신적인 디자인스쿨을 표방하며 산업디자인과 인간-시스템 공학이라는 2개의 트랙으로 나누어져 진행되던 커리큘럼 체계를 통합디자인프로젝트 중심으로 하나의 시스템체계로 바꾸는 프로세스가 시작됐다. 해당 디자인스쿨 소속 교수의 일원으로서, 두손은 물론 두발까지 들어 찬성하고 환영한다.
혁신된 체계에서 수학하고 배출되는 학부생들은 틀림없이 다양한 공학적 지식과 디자인적 역량을 함께 갖춘 융합인재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를 포함한 가까운 미래 사회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그러한 융합인재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오죽하면 정부 부처의 이름까지, 미래창조과학부, 지식경제부 같은 융합 명칭으로 개명됐을까.
필자는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에서 일명 전통적인 산업디자인을 공부했고, 제품 디자인의 실무영역에서 여러 자동차 기업의 디자이너로 십 수년을 근무한 ‘정통 개념의 자동차, 산업 디자이너’다. 어쩌면 구태적 인물일 수도 있는 필자가 요즘 가장 ‘핫’한 키워드인 ‘융합’이라는 표제 앞에 ‘디자인’을 엮어놓은 것을 바라볼 때, 사실 알듯말듯한 희석감을 느낀다. 그것은 ‘우려’로 해석할 수도, ‘작은 저항감’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어떤 영역간의 융합인재, 디자인인재가 되기 위해 필요한 학문의 영역이 다양하고 넓을수록 좋은 것은 사실이나, 어디까지나 핵심역량은 해당 전공, 디자인, 산업디자인이라는 본질적 바탕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용자 경험이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연구하고 분석하는 근본목적이 대상을 디자인하는 본질적 행위를 뒷받침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융합학문과 디자인의 대상이 넓어지고 개념이 확장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세상은 거의 모든 대상에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붙여 개념을 정의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전공, 자신의 주력 영역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뒷받침되어 노하우를 체득한 사람이 비로소 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디자인을, 이제 공학을, 이제 어떤 학문을 막 배우기 시작하는 학부생에게 각자 학문의 강력한 고유 역량을 키워주지 않고 융합을 논하는 것은 맛있는 비빔밥을 만든다면서 설익은 밥솥의 뚜껑을 열어 나물을 넣고 고추창을 섞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무엇이든, 영역을 막론하고 자신의 주특기가 있는 사람이 다른 분야까지 잘 할 때, 우리는 그런 사람을 팔방미인이라고 불러오지 않았던가? 이렇듯 우리 옛말에도 있었던 것을 보면 융합인재는 사실 오래 전 과거에서부터 존재해왔던 것이다.
디자인의 영역에서 볼 때 강력한 디자인 고유역량이 뒷받침돼야 디자인이든, 융합분야든 두각을 나타낼 인재로 성장할 것이다. 다양한 방정식을 풀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수학 공식을 알아야 하고, 공학자가 물리와 화학의 기본원리를 이해하고 있어야만 어떤 설계나 어떤 개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처럼 융합인재에게 아이디어스케치, 모델링, 면비례, 디자인용어, 디자인역사와 같은 기초영역은 그냥 갖추고 있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다. 자신의 생각, 자신의 아이디어를 손 끝으로, 펜으로 그려서 표현하는데 서툴고, 제안이 감각적이지 못하고, 프로토타입이 엉망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디자인을 설득하고, 그 프로세스를 진행할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이 아무리 사용자경험, 사용자인터페이스에 관한 내용을 이야기한다 한들 이미 ‘죽은 디자이너’일 뿐이다. 어떤 영역에서건 자신의 주특기와 주전공 역량이 확실히 뒷받침 되었을 때 융합 영역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산해진미로 비빔밥을 만든다 한들 설익은 밥에 비벼놓으면 맛이 있을 리가 없다. 그것은 죽도 밥도 아니다.
정연우 UNIST 교수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본 칼럼은 2015년 11월 10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융합인재의 조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