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두가지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먼저 글로벌 정보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가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 연구자(HCR)’ 명단에 UNIST 교수 10명이 선정됐다. 지난해보다 3명이 늘어나 국내 1위였다. 우리나라 전체 HCR 60명 중 10명이 UNIST 소속이라는 건 대학의 규모를 고려할 때 놀라운 성과다. 다음은 UNIST 창업기업 리센스메디컬이 500만불 수출탑을 수상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기업은 설립 5년 만에 자체 개발한 급속냉각 의료기기의 우수성을 입증했다. 총장으로서 뛸 뜻이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평소 연구중심대학의 역할로 강조해 온 양극단의 성과가 연달았기 때문이다. UNIST는 기초연구에서 노벨상 수상과 같은 업적을, 산학혁신에서 구글과 같은 기업을 배출하겠다는 두 목표를 향하고 있다.
UNIST는 울산의 미래를 바꿀 연구중심대학을 꿈꾼다.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은 도시와 지역, 국가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역사가 그 증거다. 세계적 혁신의 원천인 실리콘밸리의 출발점에는 강한 연구중심대학과 세계적 연구자의 존재가 있었다.
19세기 말 스탠퍼드대가 처음 설립됐을 때만 해도 미 서부는 허허벌판이었다. 서부의 명문을 꿈꾸며 설립된 스탠퍼드를 졸업한 유능한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동부로 떠나는 것이 일반적이던 시절이었다.
이를 바꿔놓은 이가 프레드릭 터먼이다. 1925년 스탠퍼드에 부임한 터먼은 뛰어난 연구자였던 동시에 대학의 기업가정신을 강조한 혁신가였다. 공과대학장, 부총장을 역임한 그는 사과밭뿐이었던 대학 주변에 산학협력 단지를 조성하고, 창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배경 위에서 1939년 스탠퍼드 졸업생 휴랫과 팩커드가 창업한 HP는 실리콘밸리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터먼이 실리콘밸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유다.
또 한명, 실리콘밸리의 이름을 붙인 이가 있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윌리엄 쇼클리다. 쇼클리는 트랜지스터의 개념을 제시해 반도체 산업의 문을 연 인물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그는 동부 벨랩에서의 연구로 1957년 노벨상을 받으며 유명세를 얻었고, 터먼의 혁신 이후 스탠퍼드 인근에 연구소를 열어 반도체 연구 인력을 모았다. 칼텍, 스탠퍼드, MIT 출신의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은 장차 페어차일드반도체를 거쳐 인텔 등 굴지의 반도체 기업을 탄생시키며 실리콘밸리의 신화를 일궈냈다.
울산시민의 염원으로 탄생한 UNIST는 개교 이후 괄목할 성장을 거듭했다. 울산시와 울주군의 전폭적인 지원 덕이다.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이 되겠다는 비전을 품고, 연구지원본부(UCRF)에 최고의 장비를 갖춰 연구자들을 모았다. 과거 허허벌판이었던 가막골에는 오늘날 300여명의 세계적 교수진과 5,000여명의 학생 및 연구원들이 함께하고 있다. 연구중심대학은 인재를 끌어들이는 자석이다. 국내외 우수 연구자, 학생들이 UNIST를 보고 울산에 찾아온다. 매년 200여개 기관이 UCRF 장비를 활용해 6,000여건의 분석결과를 받아든다. 인공지능 혁신에 동참하기 위해 UNIST AI혁신파크를 찾은 기업도 110여개에 이른다.
UNIST의 연구자들은 터먼이자 쇼클리다. 김건호 교수는 500만불 수출탑을 받은 리센스메디컬을 이끌고 있다. 조재필 교수는 울주군에 이차전지 소재 기업을 설립하고 1,0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게놈을 비롯한 생명공학 연구는 울산 바이오산업의 씨앗을 틔웠고, 지난해 문을 연 반도체소재부품대학원은 반도체 불모지였던 울산에 신산업의 가능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UNIST의 꿈은 울산을 실리콘밸리와 같은 혁신의 용광로로 만드는 것이다. 울산이 산업수도의 영광을 넘어 세계적 혁신의 중심으로 도약하는 꿈을 이루는데 있어 UNIST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UNIST는 계속해서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는 최고의 교수진을 확보해야 한다. 규모를 확장하며 젊은 교수를 모셔오지 않으면 대학은 역동성을 잃게 된다. 첨단 장비를 확보하는 것도 늦어서는 안 된다. 낡은 장비로는 미래를 선도할 수 없다. 제2의 UCRF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과감한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
울산이 곧 세계인 미래를 함께 꿈꾸자. 이미 우리는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서고 있다. 2023년 새해, 꿈의 실현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는 소식이 많이 들려오길 기대한다.
<본 기고는 2023년 1월 3일 15면 ‘울산 미래 바꿀 세계적 연구중심대학 만들겠다’ 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