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페라리. 숨막히는 아름다움을 지휘하는 무엇. 바람보다 빠를 것 같은 익스테리어디자인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너무 불편한 탑승공간이 들어있다. 자리에 앉기까지 꽤 많은 불편단계를 거쳐야 한다. 한 손으로 문을 열고 다른 손으로 차체 윗부분을 잡고 허리를 굽힌다. 잔뜩 움츠린 채 엉덩이를 시트에 먼저 집어넣는다. 다시 하체를 들어올려 발끝부터 운전대 아래로 구겨 넣어야 겨우 탑승할 수 있다. 타고 내릴 때마다 아악, 어휴, 아이고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는 불편한 디자인. 시야도 최악이다. 인간공학이나 사용자 경험 관점으로 본다면 100% 망해야 하는데, 없어서 못 판다. 나오는 모델마다 매진행렬이다.
우리가 멋이라고 부르는 것. 무언가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 것을 먼저 떠올린다. 앗! 미니멀에 친숙한 2030세대는 제외. 대한민국에서는 적어도 40대 이상은 그렇다. 장식이 곧 부(富)를 뜻하던 옛날은 화려한 치장이 아름다움으로 인식됐다. 소파 모서리의 용틀임, 액세서리나 매듭, 자수, 레이스, 특정한 옷감과 색상 등을 만드는 기회비용 가치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하면 치장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인류문명사 내내 화려한 무늬와 ‘장식=고급’이라는 등식이 맞았다. 더불어 계급적 권위의 시각적 표상으로 확장되었다. 동서양 지배층은 말할 것도 없고,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의 추장이나 아프리카 어떤 부족장을 떠올려보면 된다. 이처럼 오랫동안 멋이라는 개념은 화려한 꾸밈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공장제 기계공업의 발달이 이 개념을 변화시킨다. 모두가 열망했던 화려한 장식은 복제 대량생산되어 세상에 넘쳐났다. 울긋불긋 화려한 장식은 더이상 귀하지 않게 되었다. 건축, 가구, 실내벽지, 패션, 생활제품까지 너도나도 마구 찍어낸 장식으로 치장했다. 그러자 취향이 변했다. 근대 혁명으로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뀐 몫도 크다. 기득권 교체는 사회-문화적 바탕의 교체를 기속시켰기 때문이다. 새 판에서는 파인(Fine)한 것. 장식이 전혀 없는 매끄러운 표면이나 흠 하나 없는 색상의 균일성이 곧 높은 기술력을 의미했다. 모던(Modern) 디자인의 탄생이다. 치장에서 모던으로 고급의 개념이 바뀐 것이다. 이미 20세기 초중반의 일이다. 지금은 포스트모던, 포스트포스트 모던, 미니멀리즘까지 넘어온 21세기 한창. 그런데 아직도 장식적인 것이 디자인 한 것, 울긋불긋해야 곱다, 아름답다는 의견을 종종 접한다. 대한민국 근대화 옛 미의식의 한풀이지 디자인이 아니다.
요즘 핫한 사용자경험 (UX)디자인. 어떤 이미지, ‘어떤 형태가 사용자에게 더 호감을 주고 어떤 방식이 사용자에게 더 편리함을 주는가’ ‘어떤 구조가 사용자에게 더 안정감을 주는가’는 디자인을 구성하는 오랜 기본 요소일 뿐 갑자기 생겨난 방법론이 아니다. 100년전 이엄스가 의자를 디자인할 때 사용성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50년전 디터람스가 사용자 편의 없이 단지 그래픽만 간결한 브라운 라디오를 디자인했을까? 요즘 페라리 디자이너는 사용자경험 개념에 무지한 디자이너일까?
과제 하나! 여러분이 벤치 디자이너라면 누구를 위해 어떤 디자인을 할까? 요즘 공원이나 공항, 역사내 벤치는 모두 1인석 간격으로 고정된 팔걸이가 달려 있다. 벤치 사용자의 인간공학이나 사용자 경험을 고려한 디자인이서? 아니다. 벤치에 드러눕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눕기 불편하게 만든 디자인이다. 공원 벤치라면 편히 누워 하늘을 보게 해도 좋을 텐데. 공항 벤치라면 연착륙 기다리며 지친 대기자들이 바닥 대신 벤치 위에 잠시 누워 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부랑자나 노숙자 없는 쾌적한(?) 환경을 조성한다는 미명으로 온 세상 공공장소 벤치는 1인석 간격으로 팔걸이 테러를 해 놨다. 결국 지극히 선택적 사용자경험 디자인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페라리도 결국 같은 디자인이다. 선택된 사용자에게 무한 감동을 주며, 대중의 시샘나는 열망(애정)을 받는 것. 치장에서 미니멀리즘까지 세상이, 개념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 디자인이란 멋이다.
<본 칼럼은 2023년 1월 18일 경상일보15면 “[조원경의 이코노믹스] 규제 완화·옥석 감별이 바이오산업 도약 열쇠” 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