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수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 회복과 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 당시 수출의 국내 경제성장 기여도는 2021년 경제성장률 4.1% 중 2.1%포인트나 차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017~2019년과 비교해 수출이 경제성장을 크게 주도했음을 의미했다.
◆올해 1월 사상 최대 무역적자를 보며
당시 국내총생산에서 수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실질기준)은 37.9%에 달했다. 지난해 수출은 전년 대비 6.1% 증가한 6839억달러를 기록했다. 일평균 수출은 전년 대비 6.3% 증가한 25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러·우 전쟁, 물가, 환율, 금리의 3고 현상으로 경제성장이 둔화돼 여건이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음에도 2년 연속 수출이 증가했다.
문제는 수입 역시 전년 대비 18.9% 증가한 7312억달러였다는 점이다. 공급측면 불안정성 심화로 수입의존도가 높은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높은 수입 증가세를 기록한 것이다. 그 결과 수출 증가율을 훨씬 상회하는 수입 증가로 472억달러의 무역적자가 발생했다.
지난해 세계무역기구(WTO)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폭등세와 각국의 금리 인상이 상품 교역을 위축시키면서 올해 세계무역 증가율이 1%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로 인해 올해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경우 직격탄이 우려된다.
올 것이 왔다. 올해 1월 수입 증가율은 수출 증가율의 2배 이상으로 발표됐다. 그 결과 무역적자가 126억9000만달러로 월간 단위 역대 최대였다. 11개월 연속 무역적자가 지속돼 근심이 커졌다. 반도체 수출 급감이 결정타였다. 주요 수출국인 중국·베트남도 글로벌 경기둔화로 최근 대(對)세계 수출이 감소했으며, 그로 인해 우리의 대중·아세안 수출이 감소했다.
◆왜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이 하락했나
전날 발표된 국제통화기금(IMF)의 올해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에 포함된 한국의 성장률 하향 조정 자료는 이런 수치를 확인한 데이터였을까. IMF는 올해 세계의 성장률을 지난해 10월 예측치인 2.7% 대비 0.2%포인트 상향 조정한 2.9%로 예측했다.
우선 중국발 경기 회복 기대감이 커지고 있어 중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5.2%로 상향 조정됐다. 중국 기업의 경기 전망이 넉 달 만에 확장 국면으로 돌아섰다. 제로 코로나 정책 폐기에 따른 팬데믹 확산 충격이 일찍 마무리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1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시장 예상치(48.0)를 크게 웃도는 50.1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IMF는 미국(1.4%, 견조한 내수)과 유럽(0.7%, 에너지 도매가격 하락)을 위시한 세계 주요국에서 성장률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 재정 통화 완화 정책에 힘입어 일본 성장률 전망치도 종전보다 0.2%포인트 높인 1.8%로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종전 2.0%에서 1.7%로 0.3%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일본보다 한국의 성장률이 낮아진다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IMF의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은 한국은행(1.7%)과 같고 기획재정부(1.6%)보다는 높다. 성장 잠재력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물가상승, 높은 가계부채와 고금리, 집값하락, 한계기업 증가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소비와 투자 둔화, 반도체 경기하강과 글로벌 수요 위축에 따른 수출 부진이 자연스럽게 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반도체 수출이 10% 감소하면 국내 경제성장률은 0.64%포인트, 20% 감소하면 1.27%포인트 각각 하락할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3분기부터 시작된 국내 반도체 산업 침체가 올해 하반기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반도체 산업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경제성장률 3.0% 중 0.6%포인트 상승에 기여했지만 올해는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요인이 될 것으로 진단했다.
구체적 전망을 한국 수출입은행 자료로 살펴보자. 올해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가파른 수요감소, 가격하락, 높은 재고수준 등으로 전년 대비 17% 역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는 수요기업의 반도체 재고소진으로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둔화될 전망이다. 중반부터 반도체 구매가 회복되면서 수요 개선이 기대될 것으로 보인다. D램 가격은 4분기까지 하락하나 낸드플래시 가격은 3분기 반등이 예상된다.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5G,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자동차 등의 수요 증가로 전년 대비 4% 성장할 전망이다. 올해 한국 반도체 수출은 전년 대비 11.5% 역성장할 전망이기에 우리 수출도, 경제성장률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은 전년 1003억달러 대비 1.7% 증가한 1309억달러로 추정된다. 역대 최대 반도체 수출실적이 예상된다. 올해 반도체 수출은 예상보다 가파르게 악화되는 메모리반도체 수요와 가격, 반도체 기업과 수요기업의 높은 반도체 재고 등으로 수출이 크게 하락할 전망이다.
과거 정보기술(IT) 거품 붕괴(2001년)와 1·2차 반도체 치킨게임(2008·2011년) 시기에 국내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40% 이상 급락했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의 통계를 기반으로 반도체 산업의 경기 사이클이 상승기는 약 3년(38.7개월), 하강기는 약 1년(12.1개월) 지속되는 경향이다.
◆반도체 산업 지원, 이래서는 안된다
삼성전자(세계 반도체기업 시총 1위에서 3위로 하락)와 SK 하이닉스(시총 10위에서 14위로 하락)의 영업이익과 시가 총액이 경쟁기업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삼성전자의 지난달 4분기 반도체 분야 어닝쇼크는 머리를 아프게 한다. 이 상황에서 더욱 우려되는 점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개선해야 한다.
첫째,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반도체 설비투자액은 54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7% 감소한데 이어, 올해 반도체 설비투자액은 51조8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5.1%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국내 전 산업 설비투자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14.1%에서 지난해 24.7%로 커졌다. 각국이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상황에서 설비투자 감소는 기술경쟁에서 뒤처지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둘째, 국내 반도체 우려 사항을 반도체 칩4 회의(미국, 한국, 일본, 대만)에서 적극 논의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원천 기술,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대만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일본은 소재와 장비 분야를 맡아 전략 공동체를 이루자는 것이 칩4 동맹의 주요 내용이다. 미국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한국 기업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조치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한국무역협회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따른 한국의 기회 및 위협요인’ 보고서를 보자. 미·중 디커플링이 본격화된 2018~2021년 한국의 반도체 점유율은 2.1% 증가에 그쳤지만, 대만과 베트남의 점유율은 각각 7.7%포인트 6.4%포인트 증가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미국과의 경제 동맹에 일찍이 참가한 대만이 큰 수혜를 입었다. 반면 미·중 사이를 줄타기하며 소극적 모습을 보여온 한국은 상대적 불이익을 받은 것이다. 반도체 원천 기술과 장비에서 우리가 미국에 의존하는 부분은 크다. 대만은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실익을 챙겨왔다.
셋째, 국가차원의 과감한 반도체 산업 지원이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실적에서 반도체 부문의 영업이익이 2700억원에 그쳤다. 전년 동기의 8조8400억원과 비교하면 영업이익이 96.95%나 급감했다. 대만의 파운드리 기업 TSMC는 4분기 영업이익이 3250억4100만대만달러(약 13조3136억원)로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TSMC의 50분의 1 수준이다.
삼성전자와 TSMC의 승부를 가른 최대 변수는 국가 지원과 규제다. 대만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세제·인프라 등 전방위에서 통 큰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2020년 기준 TSMC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11.5%로 삼성전자(21.5%)의 절반 수준이다.
2021년 가뭄이 한창일 때는 TSMC 반도체 공장에 물이 동났다. 정부는 팔을 걷고 인근 농민을 설득해 논으로 들어가는 물길을 공장으로 돌렸다. 우리의 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은 지난해 6%에서 8%로 찔끔 올렸다. 법인세도 찔끔(최고 세율을 25%에서 24%로 개정) 내렸다. 삼성전자가 평택에 반도체 공장을 증설하는데 송전선 설치에만 5년이 걸렸다.
우리는 왜 정부와 기업이 원팀이 될 수 없을까. 미국이 반도체 산업에 보조금을 주는 이유는 동 산업이 안보까지 좌우하기 때문이다. 전략산업 지원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국익에는 모두가 한 몸으로 나서야 한다. 경쟁국은 파격적인 세액 공제와 더불어 막대한 보조금을 다음 세대를 위해 지불하는데 도대체 이 나라에서는 정쟁만 일삼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본 칼럼은 2023년 2월 2일 서울와이어 “[조원경칼럼] 반도체가 강타한 11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보며” 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