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이 철학관을 찾는다는 기사가 종종 뜬다. 그게 과학적이든 미신이든, 사람은 중요한 인생의 결정과 미래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알 수만 있다면 그것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더 잘 살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매우 정확히 언제 죽을지, 언제 암에 걸릴지, 언제 어떤 치매에 걸릴지를 안다면 인생을 더 잘 준비할 수 있을까? 그렇게 뻔히 결정될 인생이면 재미가 없고 운명론적인 사고로 더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될까? 사람들이 그런 정보를 어떻게 쓰든, 미래엔 개개인이 원하면 자신의 설계도인 게놈정보를 누구나 받아볼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다.
울산시 주도로 지난 25일 선언식을 가진 ‘울산 만명 게놈 프로젝트’가 그런 미래의 첫 단추이다. 2018년까지 만명이상의 한국인의 게놈을 해독하고 분석을 하게 된다. 여기서 만명의 의미는 정확히 1만명의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라 많고, 충분한, 세상의 모든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 사업의 성격은 전 국민 게놈 프로젝트이다. 영어로 ‘Genome Korea’로 불리는 이유다.
이런 방대한 양의 게놈정보가 필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결정하는데 필요한 정확한 정보가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건강, 질병, 수명과 관련한 개개인의 맞춤의료가 가능한 수준까지의 엄청나게 정밀한 정보가 나오게 된다.
게놈은 인간이 태어날 때 정해지며 운명을 결정하는데 가장 과학적이고 정확한 좌표다. 사주팔자는 간단한 시간의 좌표로 인생을 예측하려는 통계적 방법론이다. 그러나 생년월일시만 사용하므로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난 쌍둥이의 인생이 대체로 비슷하듯이 무엇인가 똑같다는 것은 똑같거나 비슷한 운명을 지닐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1930년에 한국에 태어났으면 1930년대의 시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동시대 사람들은 비슷한 팔자로 인생들을 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수 만년동안 한반도에서 태어나고 서로 유전자들을 공유한 한국인들은 비슷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만 가지고 있는 특수한 유전인자들이 있다면 그것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차이를 낸다. 이것은 한반도라는 한 환경의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이 진화를 통해 비슷한 게놈이 자연선택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의 운명은 게놈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살면서 받은 환경 영향도 게놈에 기록이 되는데, 그 기록까지도 분석을 하게된다. 그래서 단백질, RNA, 외유전체, 대사체 등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더 받는 ‘오믹스’ 정보도 게놈과 연계해서 분석하게 된다.
‘울산만명게놈’ 사업은 한국인들이 공유하는 모든 유전자들의 특성을 구글 위성 지도처럼 정확하게 그려내고 환경적 요인도 찾아내어 국민들 실생활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체질에 맞는 약이 있듯이 국민의 체질들을 정확히 그려내자는 것이다.
한국 국민의 게놈들은 언젠가는 다 밝혀질 것이다. 그런 시대의 핵심은 매우 빠르고 싼 게놈해독기이다. 언젠가는 만원에, 한사람의 게놈이 다 해독되는 시대가 온다. 결국 공짜수준에 게놈정보가 해독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적은 양의 피를 기증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후세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우리 한국인의 정확한 게놈지도의 작성에 기여할 수 있다. 이번 ‘울산 게놈 프로젝트’는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 자신에 관한 프로젝트이다.
박종화 UNIST 생명과학부 교수·게놈연구소장
<본 칼럼은 2015년 12월 1일 경상일보 19면에 ‘[박종화칼럼]대한민국 국민 게놈 프로젝트’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