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 그때까지 내가 받는 교육이 지식 그 자체를 제외하곤 위선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에겐 제대로 된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시험점수만 따는 데 급급했다. 진지한 공부(학문)와 교육이념에 맞는 교육을 펼치고자 진실한 노력을 하는 사람이 적었다. 벼락치기로 시험점수만을 잘 따기 위해 하는 것이 나의 공부였다. 그게 싫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시험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하고 싶은 공부를 그 공부의 목적을 생각한 후, 그 목적에 맞게 ‘잘’하려 했다. 각 과목의 기본 목적을 스스로 생각해서, 진지하게 배웠다. 영어를 배운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원칙적으로 무엇인지를 고민하면, 영어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스스로 깨우칠 수 있다. 그 결과, 내 나름대로의 영어 교육법을 터득했다. 사회과목 시간에는 인간 사회란 것이 무엇인지, 헌법이란 무엇인지, 왜 법률이 있고, 시장경제나 공산주의는 왜 생겼는지, 그것의 실생활에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연구’했다. 수학은 수학의 역사, 수학이야기, 수학자들 이야기 등, 수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자 했다. 나는 기존의 나 자신의 학습법, 철학, 생각방식을 밑바닥부터 재검증하기로 했다. 그 이후, 내가 얻는 지식은 엄격한 나의 지식 체계와, 나만의 철학으로 확인 후 습득하게 됐다.
이 독립적 사고 체계가 나의 과학과 학문연구의 바탕이 됐다. 쫓기는 식의 시험공부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이후, 벼락치기와 단순암기로 반에서 약 70명의 학생 중 상위 시험점수 그룹에 있던 내가, 월례고사 때, 32등인가로 추락했다. 그 순간을 감격스럽게 기억한다. 잃어버렸던 진실한 삶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 됐다. 병적으로 쫓기며, 경쟁적으로 살던 삶을 청산한 나는, 종교적 깨달음 수준의 각성을 했다. 국민학교와 중학교 때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 시험성적 경쟁의 적들이었다. 나의 위선과 거짓이 인간관계의 기초가 되는 교육을 받고 있었고, 나는 그런 거꾸로 된 비참한 교육의 모범생이었다. 중국의 저급한 소설인 ‘삼국지’ 식의 처세술 인생의 한 연기자처럼 살도록 돼 있었다.
나는 목적을 고민하고, 그 순수한 목적에 맞는 사고와 삶을 살고자 한 후, 어릴 적,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가졌던 합리적인 내 게놈의 기초 설계에 맞는 삶을 살게 됐다. 게놈은 수십억년의 공학적 최적화를 거친 뛰어난 정보처리 네트워크이다. 그 위에 엉터리 교육과 철학을 올려 놓을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게놈들은 이성적이고 공학적이다. 정확한 판단을 하도록 프로그램돼있어, 엄격한 물리 수학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자연계에서, 살아남도록 합성 돼있다.
대학교육의 이념의 근간은 독립적이고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간을 생산하는 것이다. 게놈은 이런 과학수리적 법칙에 맞는 정보 최적화에 필요한 독립적, 비판적 섭동 (perturvation)을 항상 필요로 한다. 자연 법칙속에서 그럴 수 밖에 없게 진화돼왔다. 내 인생경로의 큰 전환은 헤르만헤세나, 장 자끄 루소와 같은 서구 교육철학자들과, 프로이드의 심리학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나의 게놈은 과거의 다른 게놈들과도 정보 네트워크를 우호적으로 형성하고, 더 효율적인 정보처리 네트워크 알고리듬을 탐색했다. 나는 나와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과 좋아함을 느끼게 됐다.
내 친구들이 나보다 더 좋은 성적을 받으면 그것이 너무나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엄마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됐다. 그것은 자식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자신의 입장에서의 경쟁자가 아니라, 동반자 혹은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게놈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경쟁의 공장에서, 다른 게놈을 존중하고, 살려주고, 같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존의 알고리듬도 존재한다. 그 알고리듬의 범위는,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계의 유기적, 무기적 모든 객체에게도 적용된다.
<본 칼럼은 2023년 2월 15일 울산매일신문 “[에너지칼럼] 사용후 핵연료는 원자력 기피 이유가 되지 못한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