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최초의 8비트 컴퓨터가 한국에 출시됐다. 29만원짜리 대우 IQ 1,000을 구입했다. 그 당시 큰 돈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가 그것을 사 줘도 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외항선을 타던 아버지에게 국제 전화까지 해서, 허락을 받아 사게 됐다. 새와 물고기, 개와 동물들이 나의 유년기의 인생을 결정지었다. 컴퓨터는 나의 청소년기를 결정지었다. 나는 한국에서 대중화된 컴퓨터프로그래머 1세대다. 고등학교 때 유닉스(Unix)를 배우러 학원까지 찾아갔을 정도였다.
처음 8비트 컴퓨터 사용법을 대우전자 교육센터에서 배웠다. 그것을 가르치는 예쁜 여선생은 지금 생각해보면 컴퓨터 전문가는 아니었다. 베이직으로 프로그래밍을 하는 법을 간단히 매뉴얼대로 설명을 해줬다.
그 후 나는 부산 보수동 책방거리에서 밀수 되거나 미군부대 등에서 나오는 영어로 된 각종 컴퓨터 전문서적을 몇년 동안 사서 프로그래밍과 컴퓨터에 대해 배웠다. 그 당시 외국에서 나오는 초기 컴퓨터들의 사진들만 봐도 황홀했고, 잡지에 실리는 간단한 프로그래밍 코드를 베껴서 나의 IQ1,000에 돌려보거나 코드를 분석하거나 하면서 사춘기를 보냈다.
그 당시가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너무 프로그래밍에 정신을 빼앗겨서 건강과 다른 공부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프로그래밍에 중독이 된 것이었다. 중독이 됐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영어사전을 베이직(BASIC) 언어로 만들 때였다. 사전의 낱말을 무작위로 뽑아서 질문을 만들고, 그것의 한글번역을 묻고, 사용자가 맞게 대답을 하면 음악을 틀면서 칭찬해주고 하는 일종의 사전겸 영어단어 학습 프로그램이었다. 밤 9시부터 시작해, 두시간 정도 프로그래밍을 했다고 느꼈는데, 왼쪽 벽의 창문을 보니까 날이 밝아오는 것이었다. 그 경험에 충격을 받고, 컴퓨터는 건강을 위해서 그만둬야겠다고 결정했다. 엄마에게 컴퓨터를 치워달라고 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그 컴퓨터를 찾아서 다시 프로그래밍을 했다. 끝내는 엄마에게 내가 못 찾을 곳에다 숨겨달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가 그 비싼 컴퓨터를 버려 버렸다. 프로그래밍은 중독된다 (Programming is addictive)게놈은 수십억년 간 만들어진 일종의 ‘수학적 계산 프로그래밍’의 결과물이자, 화신이다. 인간의 두뇌는 프로그래밍작업에 중독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나의 게놈과, 뇌와, 컴퓨터가 프로그래밍을 통해서 융합한다. 내가 훗날 영국에서 공부할 때, 게놈과 컴퓨팅은 그토록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경험을 통해서, 나는 이 세상의 모든 문제들이 프로그래밍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상상력만이 그 한계였다.
그리고, 컴퓨터가 생명과, 인간과, 두뇌의 진화 (evolution)에서 어떤 본질을 공유하는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컴퓨터는, 단순한 계산기나, 프로그래밍 기기가 아니라, 생명진화상의 기술 혁신이다. 이 우주와 생명현상 모두가, 일종의 프로그래밍과 같은 절차와 피드백 룹 (feedback loop), 문제해결, 진화적 선택 같은 과정으로, 수학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얻었다.
인간은 1900년대 현대 생명학(biology, 생물학)을 통해 생명현상의 핵심에 접근하게 됐고, 그것을 배울 수 있는 시대에 다행히 우리는 태어났다. 내가 깨달은 것은, 생명 현상은 정보처리 현상이고, 전산학과 생명학의 핵심 이슈는 똑같은 것이며, 수학과 물리학이 생명과학을 위해, 깨끗한 설명과 해결책을 주는 방법론들이란 것이다.
생정보학 (bioinformatics: 생물학과 컴퓨터공학의 융합)을 하기로 고등학교 2학년 때 결심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우주와 프로그래밍된 생명현상을 모두 이해하고 시뮬레이션하려면, 80년의 인간 생애 안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본 칼럼은 2023년 2월 28일 울산매일신문 “[박종화가 들려주는 게놈이야기 (4)] 생명현상은 정보 프로그래밍”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