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가능한 인생의 경로를 다 생각해봤다. 하지만, 내 생애에 완전히 생명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났다. 합리·창의성 교육이 부족했던 한국의 학교시스템에서 괴롭게 사는 한 고등학생으로, 어차피 자신의 인생(생명현상)에 대한 답을 영원히 못 얻을 것 같으면, 자살을 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차라리, “생명의 노화” 현상을 완전히 분석해서, 수명을 5,000년 정도로 늘리면, 컴퓨터를 이용해 (혹은 컴퓨터가 돼), 우주에서 생명현상(인간의 본질 포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판단됐다. 그 이후 지금까지, 컴퓨터를 이용한 노화현상 차단이 내 인생의 제 1 목표가 됐다. 나는 동물을 좋아했다. 우리 엄마는, “새만 쫓아 다니면, 밥이 나오나, 쌀이 나오나” 라고 까지 했다. 새와 동물을 좋아했던 내겐 수의학이 최고의 학문이었다. 노화를 하려면 의대를 가는 것이 맞았겠지만, 내게 한국의 의사직은 돈 벌려고 환자 치료하는 식의 주객전도의 직업으로 인식됐다. 한국사회에서 그런 직업은 내게 장학금을 줘도 하고 싶지도 않았고, 병들고, 늙고, 죽어가는 사람을 매일 보는 것도 싫었다.
고등학교를 다닐 1980년대 중반에는, 미국과 영국에서 인간 게놈프로젝트 (Human Genome Project)를 한다는 뉴스가 돌았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가진 모든 유전 정보가 다 입수 된다는 것이었다. 게놈을 컴퓨터로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그 첫단계로 수의학을 전공해서, 내가 좋아하는 동물을 이해하고 치료하고 또, 의학적 기술도 익혀, 노화현상을 차단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대학교에서 쌓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대학원을 졸업할 때쯤 이면, 컴퓨터가 강력해져서, 게놈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생명관련 연구가 컴퓨터로 이뤄 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1986년 한 수의과학 대학에 입학했지만, 그 당시의 대학엔,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학문 자체를 위한 공부를 하는 사람은 적었다. 놀랍지 않았다. 배우는 게 좋아서, 세상에 있는 원리와 소중한 지식을 익히는 것을 진실한 목적으로 학업을 하는 학생은 한국엔 적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들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만 모여있는 곳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다. 나는 그런 사람을 아직도 (46세) 많이 만나지 못했다. 공부를 왜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하는 사람은 많이 있겠지만, 그것의 목적에 맞게, 순수하게 공부하는 사람도 적다. 내겐 생명현상을 연구하고자 하는 순수한 욕구와 목표가 있었다.
17세기의 한 프랑스 철학자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스스로의 목적에 반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의 1980년대 현실이 그랬었다. 학생이 의대를 가는 이유는, 인간애를 가지고, 고통과 질병으로부터 인간을 도와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고통 받는 사람들로부터 돈도 많이 벌고 지위를 얻겠다는 것이 목적이라는 식이었다. 권력가도, 학문연구자도, 법률가도, 사업가도, 우리모두가 어디로 향해가는지에 대한 생각을 할 시간없이 습성의 노예처럼 그냥 서로 경쟁한다. 유행에 따라,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안하게, 치열하게 사는 식이었다. 이성이 살아 있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방황하고, 반항해보기도 하는 세상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1986년은 독재정권 타도의 절정이었고, 끊임없는 데모가 있던 시기였다. 나는 청소년기에 철학, 사회과학, 교육학, 심리학 책을 읽었기에, 독재정권을 비롯한 사회의 부패와 부조리를 없애는 데 큰 관심이 많았다. 사회 시스템은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생명체이다. 한국 사회의 개선은, 목적의식과, 그것을 실현하는 위선없는 행동이 필요했다. 하지만, 내겐 노화정복이 더 중요했다.
<본 칼럼은 2023년 3월 7일 울산매일신문 “[박종화가 들려주는 게놈이야기 (5)] 영원히 학문연구를 하기위한 인생전략”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