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동물학과로 입학을 했지만, DNA구조 문제로 3학년 때, 생화학으로 과목을 바꿨다. 분자수준의 구조와 생명회로를 공부하는 것이 생명학의 본질을 가장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전산학과 생명학을 동시에 하고자 결심한 고등학교 때의 계획에 기초가 되는 학문이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동물과 식물의 본질이 바로 정보 (information) 라는데 기인한 것이었다. “생명은 아름답다, 정보도 아름답다” (Life is beautiful, so is information). 생화학은 생물학 과목 중에서 어려워서, 학생들이 회피하는 과목이었다. 유전학과에서는 1등급을 받을 수 있는데 굳이 어려운 생화학에서 2등급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그 당시 분자세포생명과학부의 학과장이 이언 부스(Ian Booth)라는 교수였다. 나이가 갓 40이었는데, 학과의 책임자였다. 영국은 젊고 패기찬 젊은 사람들이 장 자리를 많이 맡는다. 훌륭한 교수였다. 사람은 나를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나의 성적이 최상급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시험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내 성적을 보고 어떻게 판단하든지 개의치 않았다.
“세상의 모든 성적과 등급은 사람들의 능력을 간접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간단한 방편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 불완전한 방편에 노예가 되어 목을 맨다”그 당시, 생화학을 공부하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학생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넘어서 아름다운 씨톤 (Seaton) 공원을 걸으면서, 저녁때마다 생화학을 배우는 데서 오는 즐거움에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생각하면 눈물이 나왔다.
4학년이 될 때였다. 스코틀란드에서는 마지막 4학년 때 치르는 5개의 큰 시험 (한 달에 걸쳐 치름)이 4년간의 모든 성적을 결정 짓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국 학생들은 알았지만, 나는 마지막 학년에 가까이 가서 알게 된 것이었다. 이 제도는 논리적인 것이었는데, 4년 동안 제대로 공부를 했으면, 4년간 배운 것을 한꺼번에 모두 시험을 볼 때 제대로 성적이 나올 것이라는 것이었다. 시험문제는 1학년에서부터 4학년까지의 모든 교과목에서 문제가 나온다. 4학년 들어와서, 내게 지도교수인 짐 프로써 (Jim Prosser)외에 앤 글로버 교수가 개인교수로 책정되었다. 앤은 나보다도 몇 살 많지 않은 여자 교수였다. 케임브리지에서 학사, 박사, 포닥을 모두 한 언행이 똑똑한 여자였다. 이 교수와의 만남은 내 운명을 바꿔 놓았다. 앤과 나는 정기적 면담을 했는데, 그녀한테서 학문적 열정과, 현명함이 느껴졌고, 나에 대한 진실한 관심을 알게 되었다. 내가 논문을 읽고 공부를 하며, 시험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를 설득하려 했다. 박사학위는 학문을 더 효율적으로 잘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과정이고, 그것이 훨씬 더 쉽게 학문 경력을 쌓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학문자체의 목적을 위해서만 학문을 하고, 그렇지 못해서 생기는 타락과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며, 굳이 학위가 없어도 오히려 더 행복하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든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수 있고,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앤은 포기하지 않고, 자기도 학문에 열정이 있어서 열심히 학위를 한 것이며, 나의 근본적 철학에 동의를 하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 현명해야 한다고 했다. 앤과의 토론을 통해서 어느 날 갑자기 느낀 것이, 앤이 나를 지극히 생각해서 자신의 의견을 내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부모 외에, 남을 그토록 진정으로 생각해서 도와주려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의 원칙을 깨지 않으면서 앤의 의견을 존중하는 방안을 택했다. 앤을 위해서 마지막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아 주기로 한 것이다. 굳이 시험공부를 하지 않되, 최소한 교과서를 읽고, 강의시간의 수업을 녹음을 해서 복습 (다시듣기) 을 하기로 했다. 나는 노트 필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녹음기를 이용하는 것이 강의시간 것을 복습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것을 아는 내 친구들이 노트를 빌려주려 했지만, 나는 그런 것이 귀찮아서 받지 않거나, 보지도 않고 돌려주었다. 논문만 읽는 대신 복습을 하기로 한 결정은 나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앤을 위해 했던 것이었다. 앤에게 이메일을 보내 앤 당신을 위해서 최선의 성적을 내어 주겠다고 했다. 이때 나는 나 자신의 것을 희생하게 되고, 또, 그것이 결국은 나의 학문 인생에 마이너스가 될 것을 알았지만, 앤을 위해서라면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것이 내 생애에서,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 인생의 큰 결정을 바꾸는 최초의 것이었던 것 같다.
<본 칼럼은 2023년 4월 4일 울산매일신문 “[박종화의 게놈이야기 (8)] 생명과학의 꽃, 생화학”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