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3학년 때까지 DNA구조에 미쳐 꿈 속에서도 DNA구조를 연구할 정도였다. DNA를 계속 연구하고 싶었다. DNA 연구는 DNA의 서열을 연구하는 게놈 연구와 DNA의 3차원 구조를 연구하는 구조생물학 두가지가 있다. 나는 구조연구에 빠져있었고 컴퓨터를 이용한 3차원 구조 연구가 마음에 들었다. 그때 마침 애버딘 대학의 단백질 3차원 연구의 전문가인 포더길 교수의 영향으로 단백질 구조가 생명현상의 기능을 결정하는 분자라는 것을 확인했다. 포더길 교수는 컴퓨터학과의 그레이 교수와 컴퓨터로 3차원 구조를 연구했었다. 그 당시에는 생정보학(bioinformatics)이란 말이 없었고 따로 분야가 있지도 않았지만 많은 생물리학(biophysics)를 하는 사람들이 컴퓨터를 이용해 생물학 구조를 연구해왔다. 따라서 컴퓨터를 가지고 생물학을 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영국에서는 3차원 생물 구조를 연구했었다. 단백질 구조에도 관심이 생길 즈음의 어느 날, 나는 도서관에서 네이쳐 잡지를 읽다가 누군가가 징크핑거(아연손가락) 단백질에 관한 글을 쓴 것을 보았다. 손가락 같이 생긴 이들 단백질이 세포의 다른 단백질의 기능을 조절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소개 글로 기억한다. 그 저자의 이름이 아론 클룩이었다. 그 사람의 이름이 특이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사람이 있는 곳을 기억하진 못했다. 대학교가 아니고, MRC- LMB라는 생소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학부 3학년 때 그 사람에게 편지를 썼다. 그때 주소가 케임브리지로 돼 있길래 그 도시에 있는 작은 연구소로 인식을 했다. DNA가 보편적 형태로는 나선이 아니라 평평한 사다리 구조로도 존재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연구를 해왔으며 내 생각은 이렇다라는 식의 편지 속에 앞으로 단백질과 DNA 3차원 구조 연구를 하고 싶다고 쓴 것으로 기억한다. 아론이 내게 답장을 해왔다. 자기 연구소(MRC)에서 해마다 1월에 오픈데이(open day)를 하는데 그때 와 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비공식적인 소개 방문이라고 생각했고 그러겠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MRC센터의 박사학위 면접 초청이었다. 아론 클룩 박사가 내 편지를 보고 즉석에서 서류심사를 통과시킨 것이다. 나중에 케임브리지에 갔을 때 알게 됐는데 아론 클룩은 노벨상을 받았고, MRC센터의 소장이었고,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생물학자 중의 하나였다. 공교롭게도 아론 클룩 박사는 1970년대 ‘왓슨과 크릭의 DNA 구조 모델이 진짜로 맞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RNA의 3차원 구조를 연구해 최초의 tRNA 3차원 구조를 해석해냈다. 여러 공로로 1982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클룩은 리투아니아 출신의 유대계 영국 생물리학자이다.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1953년 박사학위를 받고 런던대학의 로잘린 프랭클린 박사와 구조분석연구를 했었다. 그는 한국인인 버클리대의 김성호 박사와 tRNA구조에 해석 경쟁을 했고 김성호 박사의 제자가 바로 훗날 내가 포닥연구를 한 지도교수인 조지 처치교수였다.
DNA, 단백질, 그리고 MRC(DNA, Protein, and MRC)3차원 구조 DNA와 그것들에 달라붙어 세포의 기능을 조절하는 또 하나의 3차원 구조들인 단백질을 연구하는 것은 매력적이었다. 단백질과 DNA의 상호작용에 대해 논문과 책들을 많이 읽었다. 세포의 핵심적인 기능은 DNA와 단백질간의 소통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었다. 그 당시 앤드류 트라버스(Andrew Travers)라는 사람의 책을 도서관에서 알게 됐고, 그 사람이 그 분야의 석학 중의 한사람인 것을 알았다. 그런데 그 사람도 케임브리지의 MRC센터에 있는 것이었다. 1994년 1월 MRC의 오픈데이에 갈 때 자신이 만나고 싶은 연구자들을 순위를 매겨 세사람을 선정하도록 돼있었다. 그때 앤드류 트래버스, 키요시 나가이와 리차드 핸더슨을 만났다. 키요시 나가이는 일본인 최초의 MRC 센터의 그룹리더(교수)였고, RNA와 단백질의 복합체 3차원 구조를 X-ray를 이용해 분석한 사람이었다. 인터뷰를 하고도 한두달이 지나도 애버딘에 있던 나에게 MRC Cambridge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문의를 해도 연락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탈락한 것이었다.
<본 칼럼은 2023년 4월 18일 울산매일신문 “[박종화의 게놈이야기 (10)] DNA 3차원 구조 연구와 아론 클룩”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