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알게 됐다. 그 당시 MRC에는 박사학위 수준에서 아시아인(외국인)에게 주는 장학금이 없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Cambridge의 MRC 센터는 외국인 학생 장학금을 만든 것으로 안다. 내가 MRC에 지원 할 당시 “나는 과학에 열정을 가지고 있고, 과학이 내 인생의 전부이다” 라는 말을 면접에서 할 때, 사람들이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세상엔 ‘그렇게 말을 해야 면접을 통과하는 거야’ 라는 식의 사고가 만연해 있고, 그러한 진술들은 증명 불가능한 것이다. 더군다나 나의 최종 성적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1학년에서 3학년 사이의 평균성적은 중간 밖에 안 되는데, 그런 말을 듣고 믿을 사람이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믿든 말든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면접에 떨어졌다고 실망하지도 않았다. 열정을 가진 젊은 연구자와 일할 기회를 잃은 MRC센터도 손해 본 것이었다.
1994년 3~4월쯤이었다. 도서관에서 대학교 소개서(compendium)를 보던 중 케임브리지 MRC의 Protein Engineering 센터 소속의 팀 하버드가 자신의 연구내용에 대한 쓴 글을 봤다. 컴퓨터를 사용해 단백질의 구조, 서열 등을 연구한다고 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미 MRC센터가 어떤 곳인가를 알고 있었기에 팀에게 편지를 보냈다. 답장이 왔고 내려와 보라는 것이었다. MRC-CPE (단백질공학연구소)는 지금은 MRC-LMB로 다시 흡수됐지만 그 당시 팀은 MRC-CPE에 있었다. 팀은 나보다 4살밖에 나이가 많지 않고, 일본에서도 2년간 포닥을 한 사람이었다. 나는 노화학에 관심이 있고 평생 순수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컴퓨터를 통해서 생물학을 해야 한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면접 뒤 얼마 후, 자기와 같이 일을 하자는 짧은 편지가 왔다.
스코틀랜드 대학의 4학년은 중요하다. 3학년 말에 4학년 때 어떤 교과목들을 수강할지를 정하고 졸업 학위를 정한다. 어렵지만 제대로 생물학을 할 수 있는 생화학을 택했었다. 팀을 만났을 때 케임브리지의 MRC로 가는 조건이 최소한 2.1 등급을 받는 것이었다. 나의 보통 성적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겨우 2.1정도 되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내 학우들이 과거에 나온 시험문제들을 분석하며 공부할 때, 그런 것을 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사는 것이 싫었다. 공부를 순수하게 하는 목적에 위배되는 것이었고 나는 정직한 나의 실력대로 등급을 받길 원했다.
다섯개의 큰 시험을 친 후 애버딘 대학의 마리살 컬리지의 학과 안내판에 면접대상자들의 이름이 올랐다. 면접대상은 1등급 후보자이거나, 3등급 후보 학생들이었다. 1등급은 외부의 교수들이 와서 직접 면접을 본다. 내 이름이 면접대상에 있었다. 유전학 과목을 선택한 사람들은 총 5~6명 정도가 면접 후보로 올랐는데 생화학은 2명뿐이었다. 면접에 참석한 외부교수는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온 나이가 적당히 든 신사(교수)였다. 그는 분자세포생물학 학과장이었던 이언 부스 (Ian Booth) 교수였다. 질문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4학년에 이르기 까지 각종 문제를 이것저것 엄정하게 물어보는 식이었다. 생각나는 질문 중의 하나가 ‘세포핵에서 단백질, DNA 같은 분자들이 어떻게 세포 밖으로 빠져나가는가’ 였다. 나는 그것에 관련해, 트렌드 시리즈의 리뷰 논문을 재밌게 읽었었고 수업시간에도 흥미롭게 들었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들은 교과서적인 것 보다 훨씬 최신의 것을 풍부하게 설명을 해줬다. 두 사람 다 놀라는 눈치였고 더 놀란 것은 나의 태도였을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DNA구조에 관한 아마추어 연구를 통해 과학의 엄밀성과 과학자들의 수준에 대해 많은생각을 해왔다. 나는 내 앞에 앉아있는 교수들도 나만큼의 열정과 의지로 생물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단호하고 엄밀하게 질문들에 답을 했다. 내게 시험은 즐거움이었고 영광이었다. 학문을 배우면서 그 과정의 시험을 치른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본 칼럼은 2023년 4월 25일 울산매일신문 “[박종화의 게놈이야기 (11)] 과학 열정과 등급 결정 면접시험”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