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려워도 판매가 증가하는 상품이 있다. 1930년대 대공황과 2001년 9·11테러 때 립스틱 판매는 증가했다. 올해 립스틱이 잘 팔리는 게 경제에 좋은 징조가 아니라고 독일 일간지 ‘독일의 소리’가 진단했다. 값비싼 옷을 사거나 헤어스타일을 바꾸기 어렵다면 30달러 명품 립스틱으로 만족할 수 있다. 미국 화장품 회사 에스티로더는 2001년 이 풍조를 지수화해 립스틱 지수를 발표했다. 이후 립스틱 판매량은 경기를 판단하는 지표가 됐다. 마스크까지 벗게 됐으니 립스틱 짙게 바르는 자유라도 누려야 하지 않을까. 립스틱 대신 마스카라나 파운데이션을 택할 수도 있다. 그래서였나? 올 4월 역사상 최고 주가를 쓴 화장품 회사가 등장했다. 중국 내 판매 둔화에도 고객·지역·제품 세분화에 성공한 프랑스 회사 로레알이다. 전년 동기 대비 15% 늘어난 1분기 최대 매출을 시현했다.
2004년 3만원도 안 된 LG생활건강 주가를 생각한다. 2021년 7월 178만4000원이란 사상 최고가 역사를 쓸 때 다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이제 17년 연속성장이란 눈부신 자부심은 사라졌다. 1분기 화장품의 중국 수출액은 급락했다. 혹자는 2014년 이후 K뷰티의 성장을 견인했던 중국 모멘텀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일본·유럽 같은 대안 시장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그런 해법은 섣부른 게 아닐까. 뷰티 1번지인 명동 상권이 되살아나고 있다. 1~4월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외국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배 늘었다. 중소기업 브랜드 발굴에 열을 다한 올리브 영의 판매 약진이 가파르다. 우수한 상품과 적합한 채널만 구비된다면 중소기업도 외국인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누가 K뷰티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나팔꽃에 비유하겠나. 증가할 유커(遊客)의 귀환과 차별화 전략으로 K뷰티 성공신화가 재현될 꿈을 꿔본다.
<본 칼럼은 2023년 6월 2일 중앙일보 “[조원경의 돈의 세계]립스틱 지수와 K뷰티”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