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 때문일까. 갈수록 수도권 편중이 심해지고 젊은이들의 지방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우리 헌법의 정신에 역행하는 것이다. 헌법에 명시된 기회의 균등과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은 공간상에서 지역균형발전을 통해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지방 대학의 위기가 심해지고 있다. 전국 4년제 종합대학의 35%가 수도권에 편중돼 있고, 특히 과학기술원을 제외하고 국내 상위 대학 20개 중 19곳이 서울·경기 지역에 위치해 지역인재의 수도권 유출이 심화되고 있다. 청년 이동 쏠림 가속화의 배경은 뭐니 뭐니 해도 일자리다. 지방 대도시와 중소도시의 경쟁력이 사라진 것은 청년이 좋아하는 일자리 확보 능력이 그만큼 없다는 것이다.
그간 지방 대학을 위한 노력은 지원금 지급 형태였다. 현 정부도 시범지역을 선정해 대학 지원을 약속했다. 단순 지원금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본질적으로 어렵다. 미국의 지역 우수공대 사례를 보면, 텍사스 A&M(Agriculture & Mechanics) 주립대는 석유화학공학 분야에 미국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컬리지 스테이션 지역의 즐비한 유전을 활용해 동반성장을 꾀했기 때문이다. 물론 취업률은 100%다. 펜실베니아 대학(미국 지리학 1위, 최대 규모의 기상학)이나 아이오와 주립대(농경학 미국 5위)도 지역특성을 잘 활용한 공대로 자리매김한 사례다. 이런 관행과 지역 산업 특성과의 연계 전략으로 우리도 지역 대학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울산은 2차전지 산업 특화도시이다. 삼성SDI, 현대자동차, 고려아연 등 2차전지 주요 기업이 분포해 있다. 전국(118개사)에 산재한 관련 소재·부품기업도 20개에 달해 수도권을 제외하고 전국 최고 수준이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에너지공단, 한국화합융합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울산 테크노파크 같은 2차전지 전문기관이 결집돼 있어 연구 인프라도 우수하다. 2차전지 전문연구기관과 소재·부품 기업과 이들의 수요기업이 밀집돼 있어 2차전지 전주기에 걸친 밸리가 형성돼 있는 셈이다.
울산과학기술원은 이차전지 분야의 우수 교원들을 확보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분야에서 세계 상위 1% 연구자를 다수 배출했다. ‘배터리 사이언스 테크놀로지(BST)’ 과정도 개설해 인재를 양성하고 있고 2차전지 연구센터와 해수자원화 기술연구센터와 같은 단독 연구 인프라도 갖추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삼성SDI·SK온·포스코퓨처엠과 이차전지 대기업이 인력양성을 위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연구진의 풍부한 산학연구 경험과 2차전지 특화도시인 울산의 특성을 살리면 WEF(세계경제포럼)이 아시아의 첫 번째 제조혁신도시로 인정한 울산이 전지산업 거점도시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과 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창출해 동반성장하는 미래를 그려보니 지역 균형 발전의 진정한 의미에 한발짝 다가가는 느낌이다. 수도권 편중으로 지방 대학이 아사지경인 현재, 울산이 지방대학의 미래를 정립하고 세계적 성장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본 칼럼은 2023년 6월 26일 머니투데이 “[기고] 지역 특화산업과 상생하는 K-University 육성” 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