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8월23 일 쯤에 케임브리지로 옮겼다. MRC 센터의 단백질 공학 센터장이었던 알란 퍼쉬트(Alan Fersht) 라는 화학자 겸 생물학자가 나의 공식 지도교수였다. 팀 허버드는 그때, 연구교수라서, 공식적으로 학생을 못 받았기 때문이었다. 알란의 케임브리지 대학이 곤빌 앤드 키즈 칼리지 (Gonville and Caius)였기 때문에, 나는 그 대학에 들어갔다. 이 대학은 간단하게 키즈(Caius) 대학이라고 불린다. 내가 갔을 때, 팀의 일본인 아내 데코가 1994년 8월 15일 남자아이 케이를 출산했다. 팀은 연구도 엄청나게 했고, 집안일도 많이 했다. 나는 그렇게 부지런한 서양인을 아직도 못 본 것 같다. 팀이 처음 내게 맡긴 문제는 단백질 서열을 컴퓨터로 정렬하고 나서 그 정확도를 비교 계산하는 것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 MRC센터는 케임브리지 의대가 있는 아덴브룩 지역에 있었다. 나는 MRC센터의 단백질 공학 연구소(Centre For Protein Engineering, CPE) 건물에 있었다. 단백질 공학은 알란이 창시한 분야이다. 그때 같은 건물에 있던 숀 에디(Sean Eddie)라는 리차드 더빈(Richard Durbin)의 포닥이 만든 HMMER와 일반적으로 쓰였던 BLAST, FASTA, CLUSTALW 등의 서열 정렬 알고리듬이 있었는데, 아무도 그들 중 누가 정확한지를 알지 못했다. 그 분야가 초기이기도 했고, 각자가 쓰는 데이터베이스의 세트도 달라서 서로 비교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2011년 리차드 더빈은 1,000명 게놈 프로젝트의 책임자 역할을 했고, 2012년 최초의 고릴라 게놈을 분석했다). 나는 원래 단백질의 3차원 구조 자체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3차원 구조가 어떻게 접히는지를 근원적으로 알고자 했다. 단백질 3차원 접힘 문제는 단백질의 서열이 어떻게 세포 속에서, 3차원의 구조로 일정하게 접히는가 하는 생물리학적인 문제였다.
따라서, 접힘문제는 항상 단백질 서열의 정렬 (alignment)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재미 있는 것은 단백질의 서열은 진화과정에서 조금씩 변이가 쌓여서, 몇 백만년 시간이 지나면 원래는 같았던 서열이 다른 생물 종에서 매우 다른 서열을 가지게 된다. 예를 들면, 아래의 아연손가락 (Zinc finger) 단백질의 서열을 보면 서로 다른 부분이 많다. 전체 길이도 다르고, 정렬된 곳의 아미노산들도 아래 위로 다르게 정렬이 됐다.
재미 있는 것은, 내가 MRC에서 박사학위를 할 때, 아론 클룩이 만든 많은 RNA구조를 전시해둔 모델방(model room)에 내 책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방은 3차원 단백질 구조를 최초로 해석해 노벨상을 받은, MRC 센터의 창립자인 막스 퍼룻쯔박사의 헤모글로빈 3차원 구조 모델이 있는 방이었다. 또, 왓슨과 크릭이 밝힌 2중 나선구조의 DNA 모델도 있었다. 세계최초의 바이러스의 구조 모델도 그 방안에 있었다. 이 구조들은 모두 노벨상을 만든 것들이었다.
역사적으로, 기능적으로 현대 생물학의 가장 깊숙한 핵심 방에서 매일 연구를 하게 된 것이었다. 나의 학문 세계는, DNA, RNA서열, 단백질 서열, 게놈 서열, 컴퓨터, 인터넷이라는 키워드로 가득 차 있었다. 연구실 동료인 사라 타이히만, 알렉스 베이트만, 비싼 알-라지카니, 줄리안 고프 및 다른 실험실의 에얼리라는 여자 연구원 등과 같이 방을 같이 쓰고 있었다. 그 옆방에는 컴퓨터 터미널실이 있어, 프로그래밍을 할 때는 터미널실로 가서 하고, 모델방으로 돌아와서는 논문을 읽고 쓰곤 했었다. 모두 대형 컴퓨터 모니터를 사용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프로그래밍을 하거나, 3차원 단백질 구조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MRC는 구조생물학, 분자생물학이 탄생한 곳이어서 많은 구조연구가 있는 것이 당연했다. 그때까지도, 게놈의 3차원 구조에 대해 깊이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DNA가 나선이 아니기 때문에, 게놈도 3차원적으로 매우 다양한 구조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케임브리지 MRC센터의 구조 모델연구실에서 박사학위 중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 좋았다. 어릴 적 게놈과 생물학을 하겠다던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그 방이 바로, 왓슨, 크릭, 생어, 퍼룻쯔, 켄드류와 같은 유명한 생물학자들이 수도 없이 들락 날락 거렸고, 뛰어난 생물학 업적을 만들어낸 한 핵심 장소이기도 했다.
<본 칼럼은 2023년 7월 11일 울산매일신문 “[박종화의 게놈이야기(17)] 3차원 단백질 접힘 문제”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