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안한 유전자의 반복에 관한 연구로 나는 논문을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싸이러스 초씨아의 제자로 있던 한 학생이 내 친구였었는데, 어느 날 우리 연구실에 놀러 왔고, 내가 하는 연구계획을 자세히 알려줬다. 그 뒤 3개월 동안 그가 잘 나타나지도 않아 이상했는데, 내 아이디어와 똑 같은 내용의 논문을 작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논문은 네이쳐 잡지에 1995년 실렸다. 그전까지는 완벽한 유전자를 다 가지고 있던 게놈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최초의 게놈을 이용한 유전자 복사수 연구는 의미 있는 아이디어였다. 그는 하버드에서 학사를 하고, 케임브리지에서 석사를 마치고 있었다. 나중에 박사를 케임브리지에서 받았다. 친구인 그가 나와 같이 할수도 있는 연구를 굳이 혼자만 하려고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가하든지, 제대로 연구를 해서 결과를 내면 과학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어릴때부터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자라기 때문에, 경쟁과 협력에 대한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것은 어렵다.
나중에 다른 사람의, 특히 동료들의 아이디어와, 일을 ‘훔치는’ 것이 흔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또, 같이 일을 하게 되면, 항상 누가 먼저했고, 누구의 아이디어인가라는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란 것도 알게 됐다. 이 경험이 뒷날 내가 MRC센터의 그룹리더 자리를 얻고, 정년보장직을 얻게 돼도, 케임브리지를 비롯한 학계의 수준이 이상적 수준에 못 미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결국 이 경험은 2003년 몇가지 복합적 이유로 케임브리지를 영원히 떠나는 한 이유가 됐다. 또, 나 자신도 동료나 친구나, 다른 사람에게서 아이디어를 항상 도용한다는 생각에 확신을 주게 됐고, BioLicense라는,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 라이선스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종종 과학 연구자들이 고의적으로 타 연구자의 논문출판을 늦추는등 지나친 경쟁적 행동을 한다. 또, 논문 출판에 있어, 잡지들이, 특히 유명한 잡지인 네이쳐나 사이언스가 정치적이거나, 인종적, 지역적 차별을 일반 사회만큼이나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제임스 왓슨과 프란시스 크릭의 DNA 구조 모델링에서 본, 목적 잃은 출세 경쟁이 예외가 아니라, 전문 과학자가 한번쯤은 경험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훗날, 나의 과학에 대한 열정이 줄었다는 식의 부정적 생각을 정당화하는 자료로도 쓰였다. 과학 속성은 그런 비이성적이고 효율낮은 방식을 초월하는 것이라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어차피,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만드는 것이다. 누가 처음 무엇을 했다는데 의미를 아예 두지 않는 저작권인 BioLicense를 만들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머리 속의 모든 아이디어는 교과서, 친구, 선생, 우리가 모르는 이방인들에게서 배워(훔쳐)온 것이고, 우리가 조금 살을 붙이거나, 변형한 것이다. 케임브리지에 있지 않았다면, 내가 발표한 많은 논문은 있을 수가 없다. 남이 내 아이디어를 가져 갔다고 생각한 내가 모순이었다. 1990년대 말 미국 조지 처치교수 연구실에서 포닥(연구원)을 하면서, 나는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더 절감했고, 영국에 와서 Network Biology (네트워크바이올로지: 망생물학)를 제안했다. 이것 역시 이미 수많은 학자들이 말하던 것인데, 나 스스로도 그것의 의미를 더 소중히 깨닫게 된 것이다.
망생물학은 생물학에서의 기능은 네트워크가 만들어 내는 것이고, 이 네트워크의 각 노드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과학과 지식은 개개인의 단일 노력이 아닌, 사람의 네트워크에 의해서만 증가하고 발전한다. 그것은 마치 인간의 게놈도 박테리아, 바이러스, 동식물의 각종 유전자가 모여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만들어진 복합체인 것처럼 과학도, 그런 다양한 정보의 복합체이고, 그 부분부분이 누구의 것이다라는 것은 효율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본 칼럼은 2023년 8월 23일 울산매일신문“[박종화의 게놈이야기(22)] 과학자는 경쟁하지 않고도 동기부여가 돼야 한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