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장수시대를 맞아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실제로 그들의 삶의 방식은 그다지 건강하지 못하다. 국토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4년간 걷기실천율 (1주일 동안 1회 30분 이상 걷기를 5일 이상 실천한 사람의 비율)은 9.8% 감소했고 국민 비만율은 2.5% 증가했다. 선진국 병으로 알려져 있는 비만은 현대인의 비활동적인 생활 양식과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으로 인해 발생하며, 당뇨, 고혈압, 혈관계질환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하기 새삼 주목받는 도시계획의 개념은 건강도시이다. 도시계획을 통해 시민들의 건강을 증진한다는 시도가 생소하게 들릴 수 있겠으나, 유럽에서는 이미 1986년 ‘오타와 헌장’에서 건강한 도시 구현 방안을 제시했고 현재 세계 1,400개 이상의 도시가 건강도시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다. 울산시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올해 6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건강도시 인증을 받았다.
사실 도시계획의 시작은 시민 건강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됐다. 18세기 영국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상하수도 공급 부족, 위생 및 생활환경 악화 등 고질적인 산업사회의 도시문제를 야기했고, 공중위생법을 제정해 사회 보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노력이 근대 도시계획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도시계획이 보건문제에서 비롯됐으나 그 이후 보건학의 주류적인 접근 방식은 개인의 식습관, 유전적 특징, 운동 습관과 같은 개인적인 특성에서 질병의 인과 관계를 찾는 것이었다. 건강도시의 접근이 기존의 개인질병을 다루는 보건학과 두드러지게 다른 부분은, 시민들의 건강이 개인 특성 뿐 아니라 시민이 속한 사회와 마을의 특성에 의해 공동의 영향을 받게 된다고 이해하는 점이다.
특히 선진화된 사회에서 비활동적인 생활방식으로 인해 비만율이 증가하고 이에 따른 각종 합병증이 증대해, 수명을 단축시키고 의료와 각종 사회비용을 발생시킴에 따라 비만을 도시공간의 문제로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다. 즉 도시 계획과 설계 방식을 변화시킴으로써 개인들이 외부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과 활동량을 증대시키고, 이에 따라 비만과 이에 수반하는 의료비용의 문제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건강도시에서 정의하는 건강의 영역은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현재는 비만과 같은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 사회 공동체의 건전성 등을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으로 확장됐다. 건강도시 구현을 위한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사회적 형평성이다. 바쁜 현대인들은 건강을 위한 자기투자를 할 수 있는 여력이 많지 않다. 특히 경제적·사회적 취약계층은 시간적, 금전적 한계로 개인의 건강 관리를 위한 별도의 노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건강한 도시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보행친화적 환경, 공원과 녹지, 안전한 자전거 길 조성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시민들이 도시에서 활동적인 생활(active living)을 영위하도록 유도해야 하며 이러한 도시환경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또한 건강도시 추진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
도시환경 변화에 의한 국민의 건강증진 효과는 단시간에 확인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비만과 개인 건강 수준의 관계는 인과관계가 비교적 명확하지만, 도시의 환경적 특성이 개인의 활동량 증가와 비만율 감소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도 많은 연구가 진행 중이다. 단기간에 눈에 띄는 건강 증진 효과를 만들어내는데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시민의 건강을 장기적인 정책의 우선순위로 설정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건강도시는 다루는 범위가 넓고 개념이 추상적이며 다양한 도시계획의 원칙을 포괄하고 있다. 때문에 건강한 도시 추구라는 선언적 의미에만 머무르고, 구체적인 실천전략을 제시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지난 11월 울산시에서 시민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건강도시 구현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선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환영할 만하다. 내년 3월 완료 예정인 울산시 건강도시 중장기 발전계획에서 건강한 도시 환경 마련을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가이드라인이 제시되기를 바란다.
조기혁 UNIST 교수·도시환경공학부
<본 칼럼은 2015년 12월 22일 울산매일 17면에 ‘건강도시 만들기의 원칙과 과제’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