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3년을 마치는 동안에도 생정보학 (Bioinformatics)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생정보학을 한다고 하면 같은 연구소사람 또는 케임브리지대 친구들을 비롯해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이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나는 설명을 해주면서 종종 생정보학이 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학문이 될 것이며 나중에는 생물학과 같은 것으로 인식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Biology는 Bio에 logy가 붙은 말로 생명현상의 이치를 수학·논리학·전산학을 통해 파악하는 정보학문이다.
애버딘에 초빙으로 왔던 그 나이든 교수가 내게 격려의 말을 해줬을 때, 또 프란시스 크릭이 손수 내 편지에 답을 했을 때, 나의 지도교수들이 나를 자신들과 다르지 않게 동등한 동료로서 나를 대해줬을 때 나는 큰 힘을 얻었다.
하지만 게놈 서열을 하나도 제대로 해독 못하는 상황에서 게놈학이란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항상 내 기억 속에는 미래 몇십년뒤에 언젠가는 많은 게놈 서열들이 수퍼컴퓨터에 의해 분석되것이라는 예측만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게놈을 분석한다는 것은 특별한 것이었다. 그러나 게놈학이야 말로 생물학의 핵심중의 핵심이고 인간이 하는 과학과 철학의 핵심 정보를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게놈은 생물학의 한 연구 대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것이었다.
1997년 7월 초 MRC 센터에서 박사학위를 끝냈다. 그 전에 싸이러스 초씨아가 7월부터 초빙과학자(visiting scientist)로 나를 채용해 월급을 받게 해줬다. 공식적으론 졸업 직후 MRC센터에서 포닥을 시작한 것이다. 싸이러스와 끝낼 일도 있었고 케임브리지에는 내가 사랑하는 동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게놈서열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단백질 3차원 구조의 분석과 진화를 계속 연구할 계획은 없었다. 너무나도 많은 3차원 구조를 보고 만들고 분석해 머리 속에서 단백질 구조를 컴퓨터처럼 모사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노화현상을 더 연구할 수 있는 게놈의 기능적인 연구를 하길 원했다. 1996년경 최초의 진핵생물의 게놈인 효모의 게놈이 해독됐다. 1996년 10월에 6,000개의 유전자가 효모에 있다는 논문이 사이언스 학술지에 게재됐다.
이 때쯤에 하바드 의대의 조지 처치는 효모의 RNA의 발현 양을 측정할 수 있는 아피메트릭스(Affymettrix)사의 바이오칩을 이용해 수천개의 효모 유전자를 한번에 분석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연구자들은 한 생물의 RNA발현 양을 몇천개씩 한번에 분석을 할 수 있으면 유전자의 기능을 순식간에 다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큰 기대를 하게 됐다. 이 분야를 기능유전체학 혹은 기능게놈학이라고 부른다. 나 역시도 기능을 한번에 많이 볼 수 있는 이 방법을 연구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생정보학도 많이 하는 조지 처치라는 교수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조지의 웹싸이트를 본 순간 나는 그곳이 내가 가야 할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본 칼럼은 2023년 9월 13일 울산매일신문 “[박종화의 게놈이야기(25)] 게놈은 생명현상 본질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창문”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