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방은 불로 뛰어드는 묘한 습성이 있는데, 이는 불나방이 딱히 불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빛을 나침반 삼아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며 비행하는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날다 보면 불빛 주위를 나선을 그리며 돌다가 급기야는 불로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불나방은 야행성 곤충이어서 어두운 밤이 되면 먹이를 찾아 활동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동하기 위해서는 나침반 역할을 할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불나방이 불빛을 찾아 날아가는 현상은 과학적으로 ‘광학적 지향성’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이 현상을 설명하는 주요 이론에 따르면, 불나방은 불빛의 밝기와 색상을 기준으로 해 자신의 비행 방향을 조절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밤에 비행하는 동안 밝음의 원천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빛인데, 불나방은 이 빛의 방향을 따라 비행하며, 빛의 방향이 바뀔 때 비행 방향을 조정해 빛의 원점을 찾으려고 한다고 한다. 불빛을 향한 이러한 행동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중요한 전략 중 하나이다. 그런데 만약 어둠 속에 단 하나의 모닥불만 밝게 빛나고 있다면 과연 불나방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17년간 동결된 의대 정원이 적으면 300명, 많으면 1000명까지 증원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곳곳에서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의협은 정원 확대에 우호적이지 않고, 교육계에선 ‘인재 블랙홀’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지방 의대가 지역 출신 고교생을 뽑는 지역인재 전형이 확대되며 서울의 대치동 등 일부 지역에서만 유행하던 ‘초등 의대반’이 지방까지 번진 상황이며, 의대 정원 증가는 이런 흐름을 가속화 할 것이라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원을 다니며 초등학교 동안 고등학교 과정을 끝내는 곳도 있다고 할 정도이다. 보통 이공계특성화대학이나 여타 명문대의 과학이나 공학 전공을 목표로 해 학원의 영재반에 등록하던 과학기술 인재들이 이제는 초등 의대반에 등록하게 되는 것이다. 그저 남의 일인 것처럼 치부할 수도 있으나, 매일 이런 소식을 접하다 보니 대체 한국 사회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의사가 더 필요한 것은 맞지만,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과연 지금 중증 환자가 구급차로 떠도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공공의료원을 늘려서 의료 소외지역에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이 우선이 아닌가? 모두 다 의사만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노벨상 수상자 발표 이후에는 매년 반복되어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언제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탈 수 있을까? 일본은 벌써 25명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있다는데…’ 그런데 이런 한탄은 그저 매년 이맘때 한 번씩 하고는 지나가 버리는 연중행사에 그칠 뿐이다. 마치 매년 한글날만 되면 ‘우리 말을 사랑하고 외래어를 사용하지 말자’고 야단법석을 피우는 모양새와 유사하다. 옆 나라의 노벨상을 그리 부러워하면서도 정작 과학기술자를 존중하고 육성하기 보다는 과학기술 분야 R&D 예산을 깎고, 그러는 동안 이공계 인재들이 의대를 목표로 해 학업 중단까지 하게 만든 교육 시스템을 만든 정부는 책임이 없을까? 모두가 한 곳을 향해서 달려가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불나방이 본능적으로 빛에 끌리는 것처럼, 개인은 사회적 규범과 기대에 이끌려 부와 명예가 약속된 하나의 진원지로만 몰려가도록 강요당한다. 그러나 불나방이 너무 불빛에 가까이 다가가면 종종 화상을 입거나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된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 인간들도 하나의 지점만을 향해 가다 보면 자신의 열정, 가치관, 그리고 행복에 대한 감각을 잃으면서 방향감각을 상실할 수 있다. 게다가 나방들이 다른 덜 빛나는 광원들을 무시하듯이, 개인들은 행복과 성취감으로 얻을 수 있는 대안적인 길들을 간과할 수 있다.
더 균형 잡힌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더 넓은 범위의 재능과 열망을 키우면서, 다양한 교육과 진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원해야 한다. 모두가 불나방처럼 불빛을 향해 날아가다가 불에 타 사그라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하나의 불빛만을 향해 내닫지 않도록 적절한 자원 배분 및 균형된 가치 창출이 절실하다.
<본 칼럼은 2023년 10월 18일 경상일보“[최진숙의 문화모퉁이(6)]불나방처럼”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