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를 원하면 스위스 지원 단체에 가입해야 한다. 스위스가 외국인의 조력 자살을 허용한 유일 국가여서다. 존 케인스는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1935)에서 이자소득자의 안락사 얘기를 꺼냈다. 자본 공급이 늘어 금리가 떨어지면 지구상에서 이자소득자가 사라진다 했다. 돈은 생산적인 곳에서 돌 거라 믿었다, 케인스는 그런 제로금리 시대를 정확히 예측했다. 돈은 자산가격을 높이는 데 혈안이 되었으니 그의 말은 반만 맞았다. 이제 상황은 급반전했다. 현금가치가 놀라울 정도다. 단기채를 사는 머니마켓펀드(MMF)에 돈을 넣어도 수익률에 입이 째진다. 2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5.2%를 넘은 상황이다. 대부자에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빚을 진자는 시간과 힘든 사투를 벌여야 한다.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미 연방준비제도(Fed)를 보는 이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인내심이 바닥이다. 시장은 금리 추가인상에 경계경보를 울린다. 금리 인상 예측을 집계하는 페드워치는 향후 기준금리 동결을 기정사실로 본다. 시장금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비 호조를 구실로 전쟁 중에 상승했다.
미국 경제는 더 많은 국채 발행으로 돌아간다. 신용등급 강등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이 속도로 가면 미국 연방정부의 채무 부담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한다. 미국이 빚낸 걸 세계가 부담하는 구조는 애초 불공평하다. Fed 의장은 미 국채가 매력적으로 보이려 무던히 애쓴다.
누구는 빚으로 고독사하는데 진짜 슬픔이 밀려온다. 이자소득자는 죽지 않았다. 호황을 누리고 있다. 케인스의 말은 틀렸다. 그래도 그의 말의 본질은 중요하다. 세상은 고금리든 저금리든 그가 말한 야성적 충동이라는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저금리로 연명한 좀비기업은 구조조정으로 사망해야 한다. 그래야 더 나은 글로벌 기업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본 칼럼은 2023년 10월 20일 중앙일보“[조원경의 돈의 세계] 케인스와 죽어야 할 것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