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생태계 경제’의 미래
플랫폼 경제는 2010년 전통적인 시장과 확연히 다른 개념으로 등장했다. 판을 깔아놓는 장터의 개념에 가깝고 네트워크 효과를 누리는 비즈니스의 개념이었다. ‘연결’이나 ‘매개’가 기본 역할이었다. 이후 협력적 소비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공유경제가 플랫폼 경제의 하나로 2015년 등장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이끌면서 아이폰 생태계를 조성할 때도 그 목적은 아이폰을 많이 파는 데 있었다. 그러나 팀 쿡이 지휘하는 지금의 애플은 아이폰 판매에만 몰두하지 않는다. 하드웨어 단말기와 소프트웨어 앱이 상호 발전하는 혁신 생태계를 열어가고 있다. 그런데, 자사 제품 간 연동만 가능하게 하며 다소 폐쇄적인 생태계를 고수해 온 애플이 2023년 전략을 확 바꿨다.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 11과의 연동을 강화해 아이폰 생태계 확장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애플, MS 윈도11과 연동 강화
개방형 혁신을 강조하며 국경이 없는 협업을 중시하는 새로운 ‘생태계 경제(Ecosystem Economy)’가 우리 앞에 다가왔다. 이제 기업의 경쟁은 개별 기업 간 경쟁이 아니다. 다양한 협력사를 포함한 기업 생태계 간 경쟁으로 진화하고 있다.
협업으로 생태계를 일군 사례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네슬레의 일회용 에스프레소 캡슐 사례를 든다. 네스프레소의 성공 비결은 맛보다는 편의성에 있다. 네슬레는 자사의 일회용 포장 커피 캡슐에 특화한 머신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네슬레는 기업에 특정 커피 머신을 만들라는 주문을 하는 대신에 네스프레소 캡슐과 그 인터페이스를 특허로 등록했다. 네스프레소 고유의 생태계를 설계해 기업 참여를 유도했다. 네스프레소 생태계에 함께 하려는 회사는 제품과 서비스 호환성을 확보하고자 공동의 표준을 마련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생태계 경제는 전기자동차 업계에서도 화두다. 이 생태계를 자동차 제조사와 자율주행 기술 기업으로 국한하면 오산이다. 과거에는 자율주행 기술은 자동차 제조사에 딸린 연구소가 담당했다. 그러나 자율주행 기술이 실제로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체 간의 협업이 불가피하다. 이를테면 자율주행 시스템에 필요한 인공지능(AI), 머신러닝, 센서, 알고리즘 같은 여러 분야의 기술 개발을 현대자동차 연구소 한 곳에서만 수행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커넥티드 카 커머스(connected car commerce)’도 고려해야 한다. 이는 결제 수단과 연동하는 디지털 아이디를 자동차에 부여해 자동차 자체가 결제 플랫폼이 되는 결제서비스를 말한다. 자율주행 주차 시스템도 그 플랫폼의 일부 사례가 된다.
테슬라, 자율주행 기술 생태계 야심
전기차 업계의 선두주자 테슬라의 향후 경쟁력도 AI 수퍼컴퓨터 도조(Dojo)를 적용한 자율주행 기술 생태계의 가시화에 달려있다. 테슬라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본사에 도조를 갖춘 벙커 시설을 짓고 있다. 일론 머스크 CEO는 도조와 관련 아마존웹서비스(AWS)처럼 다른 회사에 클라우드 서비스를 팔 수 있음을 밝혔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운영에 관한 기술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일론 머스크의 계획을 읽을 수 있다.
생태계 경제는 올해 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집중 조명했을 정도로 세계 경제의 화두가 되고 있다. 생태계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고객이 원하는 형태로 제공하기 위해 뭉친 서로 연결된 디지털 혹은 물리적 실재의 비즈니스 커뮤니티다. 생태계 경제에서 기업은 자산, 정보, 자원을 공유해 개별 기업이 이룰 수 있었던 것 이상의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공적인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기업의 관점은 기존과는 달라져야 한다. 전혀 상관없는 제품이나 서비스도 찾아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에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자사 기업 가치에만 초점을 두기보다 소비자의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해 생태계에 참여하는 다른 기업의 가치를 헤아릴 줄도 알아야 한다. 다른 기업의 가치 창출을 도와줄 수 있어야 생태계 경제에서 성공할 수 있다.
구글 디지털 온도계가 생태계로 진화
전례 없는 수준의 기술 가속화와 더 많은 특허 출원은 다양한 기업이 함께하는 소비자 지향적 생태계 경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구글의 스마트홈 제품군인 구글 네스트가 그런 경우다. 원격조종 스마트 디지털 온도계는 알람 기능을 추가해 소비자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네스트 생태계는 다른 기업의 혁신을 도왔다. 발광다이오드(LED) 전구 제조업체는 가스 감지나 기타 경보장치가 울리면 붉은빛 LED 조명이 들어오는 제품을 출시했다. 이는 청력 장애인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내비게이션을 네스트에 연결하면 귀가하는 집의 난방을 시작한다. 이런 네스트 생태계는 다양한 스마트 홈 디바이스를 제공하는 구글 어시스턴트 생태계로 진화했다. 온도계에서 출발했지만 여러 기업이 원격조정이 가능한 기기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확대된 것이다.
이제 더는 한 회사의 강력한 브랜드와 시장지배력만으로 달라진 소비자의 기호를 충족시킬 수 없다. 기업은 시너지를 낳는 다른 기업과의 협력으로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끊임없이 제공해야 한다.
생태계를 선도하려는 기업이라면 세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 첫째, 새로운 도전자의 출현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둘째, 고객의 니즈가 무엇인지를 간파해야 한다. 셋째, 생태계에 참여하는 다른 기업에 제대로 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때로는 적과의 동침도 마다치 않아야 한다.
“세계 경제 30%가 생태계 경제 될 것”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K 가전 플랫폼 판을 함께 키우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스마트싱스(SmartThings), LG전자는 씽큐(ThinQ)라는 스마트홈 플랫폼을 운영하며 자사 가전제품만을 연결할 수 있었다. 스마트홈 생태계를 위한 글로벌 가전 기업들의 협력체 ‘HCA(Home Connectivity Alliance)’가 선보인 HCA 표준 1.0은 이들 기업의 협력을 유도했다. HCA 대표 의장인 삼성전자는 HCA 회원사 중 처음으로 HCA 표준 적용을 완료한 후에 LG전자와 본격 협의에 들어갔다. 다른 회사 제품을 자기 회사 앱에서 작동하게 함으로써 소비자 편익을 증진하겠다는 두 회사의 결정에 박수를 보낼 만하다. 두 회사는 폐쇄된 생태계에서 벗어나 고객 만족을 높일 수 있는 열린 생태계를 선택한 것이다.
생태계 경제에서 기존 세계 경제의 상당 부분은 고객 니즈에 기초해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맥킨지는 소비자와 기업의 니즈가 상호작용해 새로 생겨날 12개의 대규모 생태계의 총매출이 2030년까지 70조~100조 달러에 달한다고 예상한다. 앞으로 세계 경제 성장 추이를 고려하면 전 세계 경제의 약 30%에 해당한다. 이는 주식시장을 비롯한 자본시장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주택 생태계를 보자. 지금까지 주택 생태계는 매우 세분되어 있었다. 집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 중개업자를 찾아가야 했다. 모기지를 받으려면 은행에, 주택 보험에 가입하려면 보험회사에, 가구를 구입하려면 가구점에 가야 했다. 이러한 서비스를 통합해 제공하는 엔드투엔드(E2E, End-to-End) 사업자가 점점 더 많이 등장하고 있다. 2030년 또는 2035년에는 집을 찾고, 이사하고, 융자를 받고, 주택 유지보수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E2E 고객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소수의 플랫폼만 살아남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틱톡,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과 같은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확산하고 있다.
생태계 경제의 승부처는 데이터다. 데이터의 속성상 소수의 대기업이 대규모 생태계를 지배하는 과점화가 발생할 우려가 상존한다. 세계 각국 정부는 이종 산업간 융·복합을 통해 생산성을 증대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 기조는 살려가면서도 경쟁 감소 위험에 대응할 조치를 제대로 마련하라는 요구에 직면할 것이다. 유럽연합은 2022년 11월 공정한 생태계 경제 조성을 위해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s Act)’과 ‘디지털서비스법(Digital Services Act)’을 발효시켰다.
생태계 경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국경을 넘나들며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된다. 생태계 경제를 우리 기업이 선도할 수 있어야 한국 경제의 장래가 밝아진다.
<본 칼럼은 2023년 10월 31일 중앙일보“[조원경의 이코노믹스] 적과의 동침도 불사, 기업 생태계 경쟁 시대 막 올랐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