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KIKO)는 한 때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 종국에는 여러 중소기업을 파산에까지 이르게 한 환 헤지(hedge) 상품의 구조 중 하나이다. 원래는 낙인 낙아웃(Knock-In Knock-Out)의 약자로 특정 구조를 일컫는 이름이었으나, 그 인기와 그에 따른 중소기업들의 손실 규모에 힘입어 그 시기 이색적인(Exotic) 구조를 가지는 환 헤지 상품 모두를 통칭하는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수출업체에게 가장 이상적인 사업 환경은 본업대로 좋은 제품을 만들어 적절한 가격에 팔아서 안정적인 이익을 남기는 것이다. 은행은 이런 수출업체의 원화 환산 매출액과 이익이 환율 변동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도록 선물환이라는 상품을 제공한다. 정해진 기간동안(보통 1년간)은 환율이 아무리 요동을 쳐도 고정해 둔 특정 환율에 계약 금액만큼 환전을 해주니 그 기간동안은 환율의 하락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환율이 오를 경우 얻을 수 있는 추가 이익 또한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업체 입장에서 아쉬운 점이긴 하다.
키코의 구조도 일정 기간 환율을 고정시켜주는 것까지는 단순 선물환과 유사하다. 여기서 이 고정환율을 업체에 유리하도록 추가로 더 높혀주는데, 그 대신 환율이 특정 조건에 도달했을 때 환전상의 이익이 사라지거나, 오히려 손실을 볼 수도 있도록 해 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2007년 10월 환율이 1달러당 899.60원까지 하락했을 때에도 달러당 1000원까지 쳐주지만, 리만브라더스가 파산하고 환율이 상승하여 1200원이 됐는데도, 여전히 1000원 밖에 안 쳐주는 것을 넘어, 원래 계약 금액의 2배를 그 환율에 환전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 원래 계약 금액의 2배가 매출액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 모자란 만큼은 1200원에 사다가 1000원에 되팔아야 하니 손실이 적지 않다. 결국 환율은 2009년 3월 1597.00원까지 상승한 후에서야 안정되기 시작했다.
키코는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한때 유행했던 어큐뮬레이터(Accumulator)의 일종이다. 슈퍼리치 투자자들조차 견디지 못하고 자살에 이르게 할 정도로 악명 높았기에 별명이 “I will kill you later” 일 정도였던 것을 보면, 구조상 대단히 위험한 상품이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런 위험한 상품을 은행이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중소기업에 팔았을까? 은행은 환 헤지 상품 등을 취급할 때 해당 업체의 재무 상태를 면밀히 점검하도록 되어 있다. 해당 업체의 매출 흐름을 검토하고, 매출액을 넘어서는 환 헤지를 실행해 추가적인 이익을 꽤 하는지를 자세히 살핀다. 특히 키코의 경우 매출액의 50% 이상은 가입하지 못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정해둠으로써 환율이 급등하여 불리한 가격에 2배의 환전을 해야하는 경우에도 큰 손실은 보지 않도록 해두었다.
2006년부터 이어진 장기화된 박스권 원화강세에서 키코로 재미를 본 업체 중 일부는 은행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무시한 채 다른 은행에서 추가적으로 키코에 가입하기도 했고, 실적을 채워야 하는 은행 영업담당 중 일부는 문제가 생길 정도로 환율이 급등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며 가입을 부추기기도 했다. 이런 탐욕을 동반한 거래들은 결국 기업을 파산에 이르게 하고, 소송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환 헤지에 대한 트라우마로 필수적인 환 헤지 수요마저 위축시켰다는 것이다.
은행 고객이 손실을 보면, 은행은 반대로 이익을 본다는 인식이 있다. 반대로 고객이 이익을 보면 은행은 손실을 볼까?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인식은 사실이 아니다. 은행은 대고객 거래로 생긴 포지션은 반대 거래를 통해 중립화 시킨다. 고객이 손실을 보는 조건으로 들어가면, 이 반대 거래 또한 더 복잡해져서 오히려 은행 쪽도 손실을 보는 경우가 많다. 은행은 이유 없이 나에게 이익을 주지도 않고, 손해를 끼치지도 않는다. 딱 한 가지, 공짜 점심은 없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 어떤 조건일 때 이익을 보고 있다면, 다른 이익을 포기했거나, 손실을 볼 수 있는 조건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수출업체 중 39.6%만이 수출액의 20%에 대해서 환 헤지를 하고 있다고 한다. 키코가 위험한 상품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환 헤지를 하지 않은 상태의 위험이 그 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 또한 알아야 한다. 특정 조건에서의 부수적인 이익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대신 업체가 감내할 수 있는 위험을 넘어서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정도의 헤지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본 칼럼은 2023년 11월 10일 경상일보“[경상시론]키코,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