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에서 약 25년 근무하면서 총장선거를 여러 번 겪었다. 직접선거시절엔 연구실을 방문해 90도로 인사하던 후보자들 때문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 뒤 간접선거로 바뀐 후에도 총장선출은 비례대표제의 성격이 있어 직접선거의 장단점을 갖고 있었다. 직접선거에서는 같은 학과 교수가 후보로 나왔을 경우 인맥을 모두 동원해서 다른 학과 교수들의 투표성향을 분석하고 전화 걸기에 돌입한다.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 큰 임팩트가 있다고 하기보다는 출신학과, 출신단과대학에서 절대적 지지를 얻는다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미가 크다. 더 재미있는 것은 단과대학끼리의 ‘빅딜’이다. ‘몰표’가 가능한 의과대학의 캐스팅보트(casting vote)가 절대적이라는 소문 아닌 소문도 있었다. 이러다 보니 배신자 아닌 배신자도 생기게 됐다. 그렇다고 모두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쌓였던 이슈들이 토론과 무대 뒤의 협상을 통해 단번에 해결된다.
중요한 이슈가 총장선거 과정에서 해결된 사례 가운데 필자의 가슴에 깊이 남아있는 두개의 예를 들자면 숙원이었던 수원의 농과대학(지금은 농업생명과학대학)서울 이전과 그후 자연과학대학 교수들의 대응이다. 두번의 총장선거를 거치며 농대의 관악이전과 자연대의 공간부족이 많은 진통을 거치며 결국 해결됐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카이스트,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과 함께 4대 과학기술원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울산의 거대산업과 시너지를 낸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 노벨상도 노려볼만하다. 이런 명문대학교의 총장직은 가히 애교심에 넘치는 사람이 수행해 제2의 도약을 이뤄내야 한다.
현실은 어떤가? 이사회에서 총장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구조이기에 어총사들이 총장이 되는 구조이다. 어총사란 어디서든지 총장만 한번하면 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필자가 만들었다. 어총사들도 할말은 있다. 현재 과기원 총장선출 제도와 실행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립대 총장선출로 돌아가본다면, 해당 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수생활을 한 분이 아니면 총장을 생각하는 것조차 힘든 현실이다.
역사가 일천한 과기원들, GIST, DGIST, UNIST의 경우 10년이상 교수생활을 하신 분들도 아직까지는 상대적으로 젊기때문에 외부에서 총장을 모셔오게 되고, 그나마 이사회 및 총장추천위원회 구성상 과학기술정통부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다. 중요이슈가 총장선출 과정에서 해결되기는 원칙적으로 어려운 구조이다.
어총사군은 통상 이름있는 학교에서 학장, 처장, 부총장을 지낸 분들로 주로 구성되며 연혁이 짧은 3대 과기원 총장직에 계속하여 응모하는 분들이다. 이런 분들을 폄훼하고싶은 생각은 절대 없다. 어디서든지 총장을 하더라도 잘하면 되지않는가? 자신이 능력이 된다면 여러 군데에 응모하는게 오히려 애국심이다. 그런데 좋은 총장을 모시려면 후보군이 넓어져야하고 오래 찾아야하고 진짜 거물을 추대하는 것도 가능해져야 한다.
현실은 어떤가? 디테일의 악마가 있다. UNIST 총장선출 일정은 광주과학기술원 및 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 종속돼 있다. 한 분의 과학기술정통부 사무관이 DGIST 및 UNIST를 동시에 관장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총장임기가 GIST, DGIST, UNIST 순으로 몇달씩 차이가 있다보니, 일정상 DGIST 총장이 선임되고 난후에야 UNIST 총장 선임일정이 시작될 수 있다 는 비정상적인 현실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UNIST 총장선출 일정이 DGIST 일정에 밀려서 한없이 늦어지는 상황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늦어진 일정이 나중에 촉박하게 돌아갈수록 UNIST입장에서는 훌륭한 총장을 모시기가 어려울뿐 아니라, DGIST에서 탈락할 어총사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모양세가 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통부는 부디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애국심으로, 울산지역의 거대한 중요성을 깊이 인지하여 UNIST 총장선출에 임하기 바란다.
<본 칼럼은 2023년 11월 28일 경상일보“[기고]과기원 총장선출에 대한 단상: 광주 대구 울산의 묘한 비대칭관계”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