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화학자 제임스 러브록이 주장한 ‘가이아 가설’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이론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지구는 살아 있다’가 될 것이다. 러브록은 이 가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지구상의 생명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라는 부제가 붙은 「가이아(1978)」라는 책을 출간하여 관심을 끌었다. 그 뒤 미국의 여성 미생물학자 린 마굴리스가 ‘세포내 공생설’을 주장하는 글을 발표하여 이 가설을 더욱 뒷받침했다. 물론 러브록의 이론은 발표되자마자 몇몇 과학자들한테서 ‘유사과학’ 이니 ‘새로운 이교도주의’니 하는 비판의 화살을 받기도 했다.
러브록에 따르면 지구는 생물·대기·바다·육지 등으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구는 이 구성 요소들이 상호 작용하여 생물이 살아가는 데 가장 적합한 환경을 유지하는 자기조절 기능을 갖춘 거대한 체계다. 그리고 늘 일정한 수준으로 스스로의 상태를 유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지구는 목적을 지니고 작용하는 하나의 거대한 살아 있는 생명체다. 지구는 생물계와 무생물계가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그 자체가 활발하게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것이다.
러브록이 주장한 가이아 가설은 특히 환경학자들에게서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환경 문제에 대해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환경 위기는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는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자기조절 기능을 갖추고 있다. 지구는 시중에 판매하는 공기청정기처럼 웬만한 공해를 스스로 정화할 수가 있다. 참으로 낙관적인 우주관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러브록은 낙관주의자에서 점차 비관주의자로 바뀌었다. 「가이아」를 출간한 지 불과 30여 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그는 지구가 이제 불행하게도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2006년에는 「가이아의 복수」, 2009년에는 「가이아의 사라지는 얼굴」이라는 책을 잇달아 출간해 현대 소비사회에 경각심을 던졌다. 앞의 책에는 ‘지구는 왜 반격하고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아직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꽤 긴 부제가 붙어 있다. 이 부제만 봐도 이 책의 내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인류가 정신을 바짝 차리면 가이아의 복수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뒤의 책에는 ‘마지막 경고’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글자 그대로 러브록은 마지막으로 인류에게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지난해는 1880년 근대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 기온이 가장 높은 해였다. 적도 부근의 바닷물 수온이 올라가는 현상인 ‘엘니뇨’가 원인으로 작년 지구 전체의 연평균 온도는 20세기 평균치보다 0.87도나 높았다. 작년은 역대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슈퍼 엘니뇨’가 발생한 해였다. 페루와 칠레 등 적도 부근 동태평양 해역의 월평균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올라가는 현상을 엘니뇨라고 부른다. 그런데 지난해는 무려 그 네 배인 2도나 올라갔다. 성탄절 전후만 해도 춥지도 않고 눈이 내리지 않아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닌 ‘그린 크리스마스’ 를 맞이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새해 겨울철은 어떠한가. 지구촌 곳곳에는 폭설이 내리고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미국 동북부 지역은 폭설로 교통은 물론 행정까지 마비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오죽하면 눈을 뜻하는 ‘스노우’와 성경에서 악의 무리와 싸우는 전쟁을 뜻하는 ‘아마겟돈’을 합쳐 ‘스노우겟돈’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을까.
이렇게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바로 엘니뇨와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러시아 우랄산맥 근처 북극해에 얼음이 얼지 않으면 동아시아 지역으로 찬 공기가 유입되는 대기 흐름이 형성된다. 북극해의 바다얼음 면적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해마다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특히 북극을 둘러싸고 있는 제트기류가 약해져 이곳에 갇혀 있던 찬 공기가 남쪽으로 내려오는 것도 시베리아 고기압의 세력을 키운다.
무더위와 추위 사이에서 극과 극을 오가는 이런 기후 불안정성은 비단 오늘내일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이런 현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심하면 심하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러브록이 말한 가이아를 기억할 때다. 인간을 넉넉한 품안에 보듬어주는, 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말이다. 대지를 어머니처럼 존경할 때 인간은 그만큼 평화롭고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김욱동 UNIST 초빙교수/문화평론가
<본 칼럼은 2016년 2월 3일 울산매일신문 16면에 ‘[오피니언]에 가이아의 복수’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