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부터 하기로 했던 표준연구원과의 한국인 게놈 프로젝트는 게놈 전체를 해독할 것을 고려했으나, 그때는 해독실험비용이 높았다. 따라서, 게놈 참조표준 프로젝트 (1억원 산자부 과제)는 100만개 정도의 SNP라고 불리는 유전 변이 소자(variation)를 보는 것으로 했다. 32명의 두 집안을 조사해 게놈 전체에서 유전자 변이를 연구하고 있었다.
마침 이때, 서정선 박사와 안성민 박사팀의 게놈 서열정보 입수 가능성이 생기게 됐다. 그래서 서정선 박사에게도 몇 차례에 걸쳐 데이터분석과 논문 작성 시 한국인 표준 게놈 구축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성민 박사에게도 이미 나와 있는 백인, 흑인, 또 진행 중인 중국인 것에 더해 한국인 인족의 표준적인 게놈 정보 확보에 의미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2009년 초기 논문이 접수될 때 그 논문 제목 자체가 ‘한국인 표준 게놈’이란 말이 들어가 있고, 김성진 박사의 게놈을 ‘KOREF’(코레프·한국인 참조표준)라고 불렀다. 우리가 그냥 게놈 해독 데이터를 받아서 분석만 해준 것이 아니라 서정선 박사팀이나 가천의대 팀에 게놈 해독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나는 그런 두 실험팀에서 기대에 부풀어 해독을 해주는 것이 고맙고, 그런 데이터를 국가 전체에 공개하게 된다는 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뛰었다. 결국 한국인 게놈 서열 분석을 우리 동료들이 하게 됐다. 내 인생에서 가장 신나는 일 중의 하나였다. 세상의 모든 것은 주관적인 세계관에 의해 그 값어치가 매겨진다. 자동차에 미친 사람에겐 한국 최초의 자동차를 몰았다는 것만 생각하면 잠을 못 잘 정도로 행복할 것이다. 한국인 게놈 분석에 참여하게 됐다는 것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올 정도였다. 한국 표준연구원의 국가참조표준센터에 게놈 표준과제를 제시해 만든 것도 한국인 게놈 분석을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외부의 실험팀들과 그것을 더 빨리 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어느 팀의 게놈 서열이 먼저 코빅의 수천 대의 컴퓨터 장치에서 열을 내면서 분석되는가였다.
2008년 7~8월로 기억한다. 나는 서정선 박사와 김성진 박사에게 따로 전화를 해서, 한국인 게놈 프로젝트 컨소시움을 구성해, 두 사람이 같이 그 결과를 공유하는 것을 제안했다. 이것은 서정선 박사가 코빅이 가천의대의 것도 분석을 해준다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는 느낌을 내게 몇 번 전달했기 때문이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두 팀에게 분명히 절대로 게놈 분석상의 데이터를 다른 팀에 주지도 않을 것이고, 두 데이터 모두 철저히 보안하에 분리해서 분석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서정선 박사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동등하더라도 최종 대표는 자신이 되기를 희망했다. 서정선 박사로서는 충분히 이해되는 것이었다. 몇 년 동안 게놈 분야에 많은 연구를 해오고 있었고, 2007~2008년에 개인 게놈 관련 관심도 더 높아졌고, 한국 유전체학회를 만들기도 했기 때문에 본인이 투자하고 있는 게놈 해독에 상대적으로 뒤에 뛰어든 가천의대보다는 그 무게가 컸다. 김성진 박사는 컨소시엄의 취지는 좋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 컨소시엄 구성이 무산됐다.
미국과 영국이 인간게놈프로젝트를 할 때, 컨소시엄으로 추진했다. 나중에 크레이그 벤터 박사가 미생물 게놈 분석에 쓰인 숏건 서열 해독법을 인간 게놈프로젝트에 하겠다고 도전장을 내고, 셀레라 회사와 같이 해독을 했을 때, 결국에는 인간게놈해독 컨소시엄은 공동으로 그 결과를 발표했다. 나는 최초의 한국인 게놈 해독이 컨소시엄이 안된 것이 슬프고 실망스러웠다.
당시, 우리는 서울대의대 유전체 연구소도 방문을 하고, 가천의대 사람들도 만났다.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김형태 마크로젠 사장이 코빅의 전산 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흔쾌히 승낙을 했다. 마크로젠에서 한 연구원이 와서 코빅의 시스템을 몇 주간 보고 배워갔다.
<본 칼럼은 2023년 12월 19일 울산매일신문“[박종화의 게놈이야기(38)] 국가참조표준센터와 한국인 표준 게놈 프로젝트”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