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설명했지만, 게놈 해독은 몇 주일간 게놈 해독 소프트웨어를 돌리는 것을 배우면 되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시스템을 운영하고, 나온 데이터를 다양한 단계를 거쳐 프로그래밍하면서 분석해 나가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마크로젠에서 온 사람에게 내가 동료들에게 배울 수 있는 데까지 배우게 하라고 했다. 서울대 마크로젠 팀과 가천의대 팀이 실용적인 성과 달성을 위해, 더 상호협력적으로 했으면 아름다운 공동 프로젝트로 남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재미있는 것은 인간게놈프로젝트 때 벌어졌던 경쟁적 상황이 한국에서 작은 스케일로 다시 일어난 것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2개의 팀이 열심히 해독하는 결과까지 나오는 것에 도움을 준 것이다. 한국의 게놈학 수준은 높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어떤 의도로 게놈 프로젝트를 했건, 서정선 박사, 김성진 박사, 안성민박사, 국가참조표준센터 등 관련인들의 노력과 자원 투입에 많은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2008년 9월 어느 날 대덕 연구단지의 코빅 사무실에 있을 때 서정선 박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게놈 데이터를 코빅에 맡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조지 처치 박사 등과 같이 정보분석을 하겠다고 했다.
이해되고 또, 예상하기도 한 일이었다. 국내에선 과학기술 연구비로 해서 생성되는 생명 정보는 원칙적으로 코빅 등의 국가센터에 다시 저장 (deposit)하고 보전하게 돼있다.
최초의 한국인 게놈 데이터를 국민 세금으로 만든 코빅에서 한국 기술로 분석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제는 가천의대의 한국인 게놈 서열 데이터만 들어올 예정만 남게 되었다.
가천의대의 초기 데이터가 9~10월 달에 들어와서 분석을 시작했다. 데이터의 정확도는 좋은 편이었다. 가천의대의 김덕훈씨가 해독 실험 많이 한 것으로 아는데, 잘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김덕훈씨는 코빅에도 잠깐 있다가 가천의대로 이직했던 사람이다.
게놈 서열은 대부분이 논문이 발표되기 전에 먼저 데이터를 공개해서, 그 분야 사람들이 빨리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 게놈해독작업을 시작하면 전 세계에 미리 보도를 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것은 게놈 해독이 순수 과학실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종의 공동 프로젝트로, 사회에 대형 데이터를 제공하는 성격이 많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해독 프로젝트를 선언하지 않고 하면 다른 연구소에서 같은 동식물이나 샘플을 중복으로 해독해 막대한 비용을 낭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지 처치와 크레이그 벤터는 미국의 대표적인 게놈분야 연구자들이다. 두 사람은 스타일이 극과 극을 달린다. 크레이그 벤터가 화려하고 사업을 하듯이 연구한다면 조지는 학구적이고, 기술적으로 연구한다.
크레이그 벤터는 게놈, 특히 생정보학의 발달이 없었으면 지금도 무명의 한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원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생정보학의 급격한 산업화, 공학화가 초대형 투자와 사업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크레이그 벤터는 생정보학의 기술 가능성을 가지고 게놈 사업의 거대한 도박을 한 사람이다. 다행히 바이오산업의 거품을 잘 타서 본인은 돈도 벌고 연구 결과도 냈고, 명예도 얻게 됐다. 벤터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사람의 열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크레이그 벤터와 같이 있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크레이그 벤터는 같이 일하기 어려울 정도로 괴팍한 면이 있는데, 그만큼 열정이 크기 때문이며 이런 이유가 자신이 크레이그 벤터를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조지 처치는 어투와 행동이 매우 점잖고 또한 조용한 사람이다. 조지 처치의 성격이 유순한 것은 그가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본 칼럼은 2023년 12월 26일 울산매일신문“[박종화의 게놈이야기(39)] 공동 컨소시엄과 공동 논문 제안”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