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 여러분, 품격 있는 창조도시 울산에 도착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필자가 출장을 오갈 때 비행기가 울산 공항에 착륙하면 늘 듣는 기내 안내 멘트다. 한 일주일 전에도 여느 때와 같이 ‘품격 있는 창조도시 울산’을 들으며 울산 공항에 내렸다. 아침 항공편으로 도착게이트를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는 기업 고위직 임원의 수행원으로서, 누군가는 비즈니스 게스트를 마중 나온 사람으로서 잔뜩 굳은 얼굴, 긴장한 표정으로 각자의 상대를 찾기 위해 부지런히 눈을 마주친다. 청사 출구를 나서면 바로 앞에 검은색 차량들이 줄지어 서있다. 세상 그 어떤 공항이라도 청사 출구 앞은 주정차 금지구역일 것이리라. 교통지도원이 연거푸 이동시켜 달라지만, 아랑곳 않고 ‘사장님’이 타실 때까지 기사는 막무가내로 뒷문을 열어놓고 버틴다.
필자는 당일 어떤 심사 차 울산시청으로 갈 참이었는데, 한 시간가량 여유가 있어, 공항에서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다 가려고 다시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청사 내 식당에서 간단한 요기와 업무를 볼 심산으로 자리를 잡았다. 웬걸, 아침임에도 식당은 큰소리로 떠드는 네다섯 명의 손님이 있었는데, 중간 중간 대화를 들어보니, 손님들은 사실 공항 밖에 대기 중인 택시의 기사들이었다. 아무러면 어떠랴, 요기 후 택시를 타기 전, 구두를 닦으려고 구두코너를 찾았다. 그런데 웬걸, 구두 닦는 사람은 자리에 없었고, 필자는 그 사람을 찾으러 청사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했다. 재미있는 것은 청사 내에서 혼자 서성대는 머리 큰 아저씨를 보면,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고 물어볼 법도 한데, 아무도, 심지어 안내데스크 직원도 곁눈질로 힐끗 쳐다볼 뿐 각자의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참을 걸려 행방을 찾은 구두코너 직원은 청사 벤치에 앉아서 자고 있었다.
십분 남짓 구두 손질 후, 나가서 택시를 타려 했는데, 이번에는 택시 기사가 없었다. 빈 택시들 근처를 오가며 몇 분을 다시 서성였더니, “그 택시 타이소”하며 한 기사가 걸어 나왔다. 어쨌든 택시는 출발했다. ‘멋진 이벤트’는 또 하나 있다. 시청을 거의 다 와서, 갑자기 택시를 멈추고는, “여기 내려서 저리로 건너가면 바로 앞에 시청 있심더!”라고 한다. 왜 시청 앞까지 안 가느냐는 필자의 물음에 “여기 내려서 가는 게 더 편합니다. 바로 앞 아닙니까!”라며 빨리 내리기를 종용하는 것이었다. 실랑이가 싫어 택시에서 내리는데, 곧바로 타려는 다른 손님과 바통터치하듯 뒷문 손잡이를 주고받았다. 택시기사는 손님을 연달아 태우고 싶어서, 앞선 운행을 임의 종료시킨 것이었다. 그것도 왜 목적지까지 안 가느냐는 필자를 귀찮아하면서 말이다.
울산시청에서도 비슷한 일은 계속되었다. 구청사와 신청사를 쉽게 구분할 리 만무한 필자가 로비를 헤매도, 안내데스크 직원과 눈이 마주쳐도, 데스크 앞 10㎝까지 걸어가서 직접 묻기 전까지는 “어디를 찾으십니까”하며 도와주질 않는다.
요즘은 동네 보건소를 들러도 문소리만 나면, “어떻게 오셨습니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며 직원이 스프링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너무 과한 친절에 들어가기가 민망할 정도다. 김포공항에는 강력한 교통지도 때문에 청사 앞에 세워놓은 ‘간 큰 사장님 차’를 보기 어렵다. 택시기사들이 큰소리로 이야기 나누고 있는 공항 식당이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직원이 청사 벤치에 늘어져 TV 보고 낮잠 자며 자리를 비우는 공항, 벌건 대낮에 손님을 연달아 태우겠다고 타고 있던 손님을 미리 하차시키는 그런 경우가 어디에 있을까. 아무리 좋게 보아도 ‘품격 있는 창조도시’의 모습이 아니다.
겉은 좋다. 여기저기 만들고 강화하고 있는 문화사업, 지원사업, 신도시 조성사업 등은 타 시도의 모범이다. 하지만 평균소득이 높다고, 돈 들여 건물 짓는다고, 품격이 생기고, 유행하는 기술과 아이템을 막무가내로 들여놓는다고 창조도시가 된다면, 울산시는 이미 수십년 전에 품격있는 창조도시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우리가 간과하는 것, 울산이 챙겨야 하는 것은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라는 것임을 이 지면을 빌려 에둘러 말한다. 그래도 긍정적인 것은 ‘품격’과 ‘창조’의 중요성은 알고 있는 울산이라는 점이다. ‘품격 있는 창조도시’가 시의 모토이니 말이다.
정연우 유니스트 교수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본 칼럼은 2016년 2월 12일 경상일보 18면 [경상시론]에 ‘품격있는 창조도시 울산’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