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는 치료약이 없다. 독한 감기를 독감으로 오해하면 틀린 거다. 둘은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가 다르다. 감기는 1~2주 이내에 특별한 치료 없이 지나간다. 독감은 폐렴 같은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의사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감기 걸린 국내 영유아 10명 가운데 4명은 항생제 처방을 받는다. 우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항생제 사용이 높은 이유 중 하나다. 감기 하면 낯익은 약을 먹어야 한다는 잘못된 의식이 문제다. 가벼운 목감기에 걸렸는데 의사가 11개에 달하는 알약을 처방했다는 인터넷 사연이 놀랍다.
감기에 항생제를 예방적으로 사용하면 문제가 된다.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고 부작용이나 내성 증가 위험이 생긴다. 내성으로 항생제가 병을 일으킨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억제하지 못한다면 큰일 아닌가. 항생제 부작용을 말하는 ‘조용한 팬데믹(Silent Pandemic)’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보다 무섭다는 게 의료계 평가다. 항생제 내성으로 치료할 수 없는 수퍼 박테리아 문제가 보건의료 위기의 한 가운데에 있다. 2050년 이로 인해 연간 1000만 명이 사망해 암 사망자보다 많을 거라 한다.
전문 과목을 드러내지 않고 개원하는 의사도, 인턴만 마치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지 않은 일반의 개원도 증가추세다. 국민 의료부담을 늘리지 않고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불필요한 비용은 줄이고 필요한 곳에 돈을 수혈해야 한다. 오남용하는 감기 처방은 낮은 수가 때문이다. 이제 이런 혜택은 과감히 줄여야 한다. 대신 소아과나 산부인과 같은 필수의료에 인력이 유입될 수 있도록 수가 보상을 뒷받침해야 한다.
나아가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 정착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 내성이 없는 항생제 신약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내성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조용한 팬데믹에는 이런 큰 목소리로 대응해야만 영이 설 수 있다.
<본 칼럼은 2024년 1월 26일 중앙일보“[조원경의 돈의 세계] 조용한 팬데믹의 충격’”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