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스트는 감동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울산지역의 국립대 설립에 대한 열망은 1992년 김영삼 대통령 후보의 공약을 시작으로, 2002~2003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공약과 당시 비서실장 문재인씨의 노력, 그리고 울산시민 과반수 53만명의 서명을 거쳐 2007년 법인화 국립대 출범 및 이명박 대통령 시절 2009년 첫 신입생 모집으로 꽃을 피웠다. 최초의 법인화 국립대학이었던 유니스트는 그 후 박근혜 대통령 당시 2015년의 과학기술원 전환 후 현재 4대 과학기술원 중 2번째 규모로 성장하는, 파란만장한 역사속에서 기적과 같은 성취를 이루어 냈다.
이러한 급격한 성장이 현재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으며 세계적 지위를 떠나 국내에서도 이미 그 위상이 예전 같지 못하다.
유니스트가 당면한 위기를 몇가지로 정리해보겠다.
첫째, 신임 교수에게 주는 정착자금이 국내최고 수준이 더 이상 아니다. 울산시 및 울주군에서 1년에 150억씩 들어오던 자금으로 신임 교수에게 때로는 10억 이상의 고가장비를 사주었던 시절은 꿈꾸지 못하더라도 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도 뒤지는 현실은 매우 서글프다. 이제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장비가 필요 없는 이론 및 컴퓨터 분야 위주로 교수를 뽑기 시작한다면, 이러한 분야들의 중요성은 당연히 인정하지만 이미 학교는 망조로 접어든 것이다.
둘째, 한때 카이스트와 포항공대를 능가하겠다는 비젼이 있었으나 현실은 이들 학교 및 수도권 대학에 교수들이 1년에 10명 이상 이직하고 있어서 이탈 절대 숫자 면에서 4대 과기원 중 최대 규모다. 인접 포항공대는 바야흐로 돈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으니 유니스트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 대한 갈망은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하며 포기하기에는 유니스트의 지역적·역사적 사명이 너무 크다.
셋째, 유니스트의 정체성 정립이 쉽지 않다는 점이 항상 내재하는 장기적인 위기이다. 궁극적으로는 4개 과기원들이 구조조정을 해서 카이스트 대전캠퍼스, 카이스트 광주캠퍼스, 카이스트 울산캠퍼스, 카이스트 대구경북 캠퍼스로 가는 것도 국가 경쟁력에 있어서 좋을 수 있다. 실제 카이스트가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구도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예산지원을 넘어서는 울산지역과의 긴밀한 연계가 있어야 다른 과기원들과의 차별이 가능하며 카이스트를 능가할 수 있을 것인데 여기에 대한 전략 수립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카이스트가 MIT를 모델로 했고 포항공대가 Caltech(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을 모델로 했다는 소문이 있다. 유니스트도 역사적으로 본다면 초기에 MIT 얘기가 나오지만 모델 정립에 있어서 갈팡질팡하는 것도 사실이며 남을 꼭 따라갈 필요는 없다. 유니스트가 다른 과기원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과학고, 영재고 학생 유치에 힘쓰는 것을 보면 때로는 한심한 생각도 든다. 과학고 영재고 학생은 이미 어릴때 힘이 많이 빠진 반면 일반고 학생이 성적은 안좋아 보여도 나중의 잠재력이 훨씬 크다고 볼 수도 있다.
넷째, 예민한 문제이겠지만, 1학년생의 학과결정 관련해서도 100명이 진학하는 학과와 5명이 진학하는 학과가 공존하면서 장기적인 문제가 상존한다. 학생에게 모두 맡긴다는 미명 아래 진학지도가 아니라 학생유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가장 쉬운, 조용한, 밖으로 말이 안 나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다섯째, 학교내에 호텔과 식당을 겸할 수 있는 시설의 부재는 유니스트의 절대적인 약점이다. 인도공과대학(IIT; Indian Institude of Technology)만 보더라도 새 캠퍼스를 설계할 때 숙박 및 식사를 할 수 있는 guest house를 가장 먼저 짓는다.
어떻게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잘되고 있다고 선전하며 카메라를 보면서 활짝 웃는다고 일이 풀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며 과학기술정통부, 울산시 및 울주군 그리고 유니스트가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본 칼럼은 2024년 1월 31일 경상일보“[김대식의 과학과 사회]유니스트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