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한국인 게놈이 2009년 5월과 7월에 발표 된 것은 2008년 11월 중국의 BGI사가 논문을 발표한지 6개월만의 일이었다. 2010년 10월에 발표된 일본인 게놈보다는 1년 5개월이 앞선 것이다. 게놈 해독에 경쟁이 붙다보니 계속 첫 번째니 두 번째니 하는 말이 나오고, 언론에까지 그것이 보도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과학연구는 등수를 매기는 수능시험이 아니다.
나는 한국인 게놈 분석의 가장 큰 의의는 첫째, 한국 내에서도 대용량 게놈을 ‘자체적으로’ 해독·분석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는 점이다. 학문에서 중요한 것은 단타성의 뛰어난 연구 결과보다도, 안정적인 인프라에 바탕을 둔 학풍(school)을 구축하는 것이다.
서울대의대의 서정선박사를 비롯한 많은 연구원들이 게놈분야에서 일을 해왔다. 이들은 생명공학회사를 설립하고 연구소를 운영했고, 다수의 사람들이 게놈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하는 분야의 일을 해온 결과, AK1을 비롯한 많은 수십명의 한국의 게놈이 분석 됐다.
2010년 7월 23일 에는 한국의 대형 투자 기관의 사장인 이민주씨가 30억원을 서울대의대 게놈연구소 (GMI)에 ‘아시안 게놈 프로젝트’를 위해 기부를 하는 성과를 낳기도 했다.
가천의대 연구진도 능동적으로 급변하는 게놈분야에서 과감한 투자와 조건 없는 데이터제공과 정보교류를 통해 훌륭히 게놈 사업을 진행했다.
또, 그 파급효과로 테라젠이텍스사와, 삼성 SDS, KT등이 게놈 사업에 참여하게 해 국가적으로도 게놈산업분야에 큰 자극을 줬다. 이런 전반적인 게놈 및 생정보학 분석의 환경이 확대된 것은 잘 된 일이다.
둘째는, 이들 프로젝트를 통해 그전의 대형 게놈 사업에서는 없었던 전문 인력 양성이 대규모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한국인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그전에 몰랐던 지식을 나도 내 동료들을 통해 많이 배웠다. 10여명의 젊고 더 많은 열정을 가진 동료들이 그 프로젝트를 통해 스스로를 훈련해 가는 것도 보게 됐다.
셋째는, 이런 게놈 연구가 궁극적으로 질병치료에 정말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많은 생물학 연구는 질병치료의 가능성 때문에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게놈학 연구는 그런 가능성을 넘어 실질적인 맞춤의료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거품 많은 생명공학에, 거품이 적은 기술과 산업이 생기게 된 것이다. 암 환자의 게놈을 해독기로 정밀하게 분석하면, 이때까지는 볼 수 없었던 정확한 서열상의 변이를 한번에 찾을 수가 있다.
한국인 게놈프로젝트는 생물학의 역사를 게놈을 통해 연역적인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하는 거의 원점에서 한국이 다른 많은 나라보다도 더 앞서 시작하게 된 큰 계기를 마련했다. 국수적인 산업의 경쟁 관점에선 제대로 된 본선게임이 있지 않아왔던 생물학계에, 본선부터 우리는 좋은 팀들을 가지고 경주에 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한국인 게놈분석 이후, 나는 대전의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을 떠나 수원에 생기게 될 ‘게놈연구재단’과 테라젠 바이오 연구소로 직장을 옮겼다.
김성진박사의 한국인 게놈 프로젝트에서 해독한 DNA 조각 수는 무려 17억5,000만개 였다. 총 합산된 DNA 길이로는 821억 염기(base pair) 에 해당된다. 이 양은 한개인 유전체 총량의 29배에 해당하며, 현재 널리 쓰이는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형태로는 82 기가 바이트의 용량이다. 게놈 길이 하나의 29배나 되는 양으로 서열을 해독한 이유는 해독장비가 완벽히 오류 없이 서열을 해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본 칼럼은 2024년 3월 26일 울산매일신문 “[박종화의 게놈이야기(46)] 한국인 게놈 분석의 의미 (The meaning of Korean genome)”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