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의 출산율이 사상 최저치인 0.72명을 기록했다. 사실 저출산은 한국만의 일은 아니며, 미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2023년 기준 1.6명이라고 하는데, 고작 0.72명인 한국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1명은 넘으면서 무슨 불만이야!’ 할 수 있겠지만, 1960년대 거의 3명에 육박했던 때와 비교하면 미국의 출산율은 하락 추세이며, 백인 중산층의 경우 더욱 더 출산을 기피한다고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Caitlyn Collins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웨덴에서는 부모가 모두 몇 개월씩 유급 육아휴직을 가질 수 있으며, 유연 근무제도로 오후 내내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한다. Collins는 이러한 보육 환경을 가졌기에 스웨덴이 출산율이 미국에 비해 높다고 진단한다.
필자가 늦은 나이에 낳은 둘째 아이가 겨우 5개월도 안되었을 때 시간제 도우미 이모와 친정어머니를 모두 ‘활용’하며 겨우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일과 육아로 피로에 지쳐 있었는데, 하루는 우리 친정어머니께서 ‘뭐 그리 힘들다 그래. 얘 같으면 나는 열명은 키우겠다!’하시는 게 아닌가. ‘잘 울지도 않고, 잘 먹고 잘 크는데, 이렇게 쉬운 애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친정어머니는 실제로 아이 네 명을 키우며 하루에 도시락 6개를 싸신 적도 있었다. 그래서 하루는 여쭤보았다. ‘그 때 힘들지 않았느냐’고. 그랬더니, ‘그 땐 힘든 거 몰랐다. 도시락을 싸는 게 즐거움이었으니까’라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시는 것이었다.
그럼 도대체 지금 세대의 엄마들은 도시락 6개를 싸지도 않으면서, 애를 네명을 키우지도 않으면서 왜 이리 힘들어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위에 언급한 미국 사회학자의 책에서 얻을 수 있었다. 미국과 한국이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이라면, 부모 역할이 ‘시간과 노동 집약적’이라는 것이다. 아이를 잘 먹이고 재우고 학교 보내는 것으로 육아가 끝이 아니다. 주말에는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여기저기 가야 하니 부모는 주말에도 쉴 수 없다. 심지어 연휴가 그리 달갑지 않다는 부모들도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방학때도 그냥 쉴 게 아니라 아이의 풍부한 경험을 위해 이것저것 찾아 봐야 하고, 어떤 책이 좋을지도 찾아보고, 어떤 학원이 좋을지도 알아 봐야 하며, 스포츠를 좀 시키면 좋다고 하니 그것도 알아봐야 하며, 게임을 오래 하고 있으면 몇 시간이면 적절할지, 행여나 나쁜 친구를 사귀고 있지는 않은지도 걱정해야 한다. 또 귀가 후 아무리 피곤해도 아이와 같이 시간을 보내야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혹시 나는 좋은 부모가 아닌 것 아닐까?’ 하며 죄책감을 느낀다. 동시에 부모 역할을 열심히 하다 보면, ‘내가 이러다가 내 성과를 못 내서, 승진을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도 몰려온다.
일과 가정의 양립, 출산 장려금 등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러한 ‘노동 집약적인 부모 역할’에 대한 사회적 기대며, 이는 21세기 들어 더 심해졌다. 인류학자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경쟁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후손을 양육하기 위한 ‘느린 생애사 전략’이라는 진화론적 설명도 제공한다. 또한 우리 사회는 청년들에게 ‘일이야말로 삶의 중심’이라고 가르친다. 일로부터 자아 성취감을 느끼고, 일을 잘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 결국, 부모의 노동 집약적 육아행위는 현재 이 사회가 기대하는 인재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다.
결국 ‘부모 되기’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변화했다면, 단지 금전적 보상이나 출퇴근 시간 조정만으로는 초저출산 현상을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부모 역할은 ‘기쁨’이 아니라 ‘희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인재로 만들기 바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출산을 장려하는 것은 어차피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문화의 변화에 따라 우리의 인구 정책도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본 칼럼은 2024년 3월 27일 경상일보 “[최진숙의 문화모퉁이(11)]초저출산 한국 사회”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