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경수술의 역사는 매우 길다. 유대교에서는 생후 8일 만에 포경수술(할례)을 행하게 되며 하나님과의 약속이라고 여긴다. 이슬람교에서는 대부분 남성들이 수술하게 되지만 꼭 생후 며칠 후 또는 몇 달, 몇 세라고 딱히 정해진 것은 없다. 기독교가 세계종교가 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은 이방인들에 대한 포교였으며 또한 이방인들이 굳이 포경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선언한 것이다. 마음의 할례가 필요한 것이지 육체적 할례가 필요치는 않다고 본 것이다. 만약 이 사건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지금과 같은 세계종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인으로서, 포경수술이 행해진 상태로 고대 로마제국시대에 체력단련장과 목욕탕에서 옷을 모두 벗고 운동을 하거나 목욕을 하게 됐다면 어찌 될 것인가? 당연히 귀두부를 덮는 포피가 없이 귀두가 노출돼 있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았으며 추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포피가 없는 성기는 수술에 의한 것이든지 선천적으로 없든지 간에 보기 흉하고 기형적인 것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당연히 공개적으로 포피를 퇴축시켜 귀두부가 노출되는 것도 용납되지 않았는데, 원형의 안전핀같이 생긴 기구를 포피의 가장자리에 가로질러 부착시키는 음부봉쇄술이 흔하게 시행됐다.
고대의 포피복원술은 건강상의 목적이 아닌 외형적 이유 때문이었다. 로마에 살던 많은 유대인들은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포피복원술을 시행했다. 마카비서(書), 탈무드 및 고린도서에 보면 포피복원술을 시행한 기록이 있다. 이집트인들도 한때 관례적으로 포경수술을 시행했으나 로마시대부터 통상적인 포경수술은 성직자들 사이에서만 시행됐다.
여기서 재미있는 기구가 등장하는데 바로 ‘주데움 폰둠’ (Judeum Pondum)이라고 해서, 로마시대의 유대인들이 자신의 귀두를 가리기 위해 발명해 낸 것이다. 깔대기 모양으로 생긴 구리로 만든 튜브를 음경체 주위에 부착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무거운 구리튜브가 성기의 피부를 앞쪽으로 잡아당겨 늘이는 효과를 유도해 당겨진 피부가 제자리에 위치해 귀두부를 덮고 새로운 포피를 형성토록 하지만, 지속적인 효과를 냈는지는 알 수 없다.
사도바울 이후 2000년이 지나 2차대전 나치시대에 다시 포피복원술이 급하게 필요하게 된다. 유태인을 제외한 다른 유럽인은 포경수술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유대인을 색출할 수 있었다.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했을 때 포피복원술을 많이 시행됐던 바르샤바 의사들의 보고서가 있기는 하지만, 당시 시행했던 수술의 결과 및 성공 여부뿐 아니라 수술방법들에 대해 밝혀진 것이 없다. 불행하게도 결과는 일반적으로 좋지 않았으며 절망상태의 사람들이 단지 상술에 이용당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훗날 영화제 수상작의 소재가 됐던 ‘솔로몬 페렐’의 전쟁회고록에서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 고아인 ‘페렐’은 독일인으로서 자신을 숨기고 살았던 경험을 기술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히틀러 청년 군사학교에서 아리아인의 모범으로 추앙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포경수술을 시행받았기 때문에 유태인이라는 것이 발각될까 항시 두려움에 떨었다. 귀두부 주위의 피부를 봉합해 포피복원술을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페렐과 같이 많은 유태인들도 포피복원술 시도가 성공적이었는지는 의심스럽다.
우리나라 포경수술은 1945년 미군 군정과 함께 대대적으로 시작됐지만, 이제는 포경수술바로알기연구회(포바연) 및 구성애 선생 등의 노력에 의해 많이 줄었다. 포바연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고등학생들의 포경수술 비율이 2000년도에 90% 이상까지 올라갔다가 이제는 30% 미만으로 내려왔다. 목욕탕에 가 보면 포경수술을 안한 사람들이 포피를 뒤로 젖혀서 귀두를 노출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일종의 반포피복원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를 줄이겠다고 마구잡이로 수행되는 포경수술, 반면에 포경수술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우리나라, 이처럼 세계적 포경수술 비율은 현재 20~30%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대부분 이슬람교도에 의해 행해지지만, 아직도 역사적으로 다이나믹한 면이 있다. 포경수술 최전선에 있는 우리나라, 앞으로 그 귀추가 주목된다.
<본 칼럼은 2024년 4월 10일 경상일보 “[김대식의 과학과 사회]역사적 포피복원수술”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