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UNIST 인문학부에서 학부생들에게 문학 관련 수업을 가르친다. 현대한국소설, 소설의 시학, 문학과 과학 등 문학 수업과 디지털 인문학 입문, AI와 스토리텔링, 멀티모달 생성의 문학적 이해 등의 문학-공학 융합 수업 등을 가르치는데, 이 중에 단연 인기 있는 수업은 현대한국소설이다. 아무래도 고등학교 때 한 번쯤 들어봤었던 작가와 작품을 다루기 때문이 아닐까. 익숙함이 인기의 비결이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수학하기에 쉬운 수업은 아니다.
깊은 생각을 요구하는 질문들로 학생들이 곤혹스러워할 때가 많다. 그러나 어려우면서도 즐거운 것이 소설 읽기라고, 학생들은 소설 읽기에 자신의 문제를 투영하여 때로는 창의적으로 때로는 비판적으로 생각을 펼쳐낸다.
한국현대소설에서 학생들이 몰입해서 읽는 소설 중 하나는 이문열의 대표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이다. 학교라는 익숙한 공간과 친구들과의 관계 또 그 속에서 전개된 권력에의 굴종과 저항의 서사는 학생들이 한 번쯤 직간접적으로 겪어보았을 내용이기도 하다.
소설은, 서울에서 살던 한병태라는 학생이 지방의 한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반에는 이미 엄석대라는 급장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다. 그는 타고난 힘과 싸움의 기술 또 처세술로 선생님의 신임을 얻어, 선생님의 대리역으로 학급 미화에서부터 수업준비까지 모든 일에 관여한다. 서울의 민주적 권력 운용에 익숙해져 있던 한병태는 이러한 대리 시스템이 달갑지 않다. 병태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석대에게 반항하다가, 결국에는 그에게 굴복한다. 그 뒤에는 석대의 2인자로서 여러 혜택을 얻는다. 동네 맛집 정보, 동네 행사 정보, 또 싸움의 서열에서 높은 자리 차지하기 등등. 그런데 이를 얻기 위해서 병태는 한 가지를 해야 한다. 자신의 미술 재능을 발휘하여 석대 이름으로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 그것이다.
병태는 비슷한 방식으로 다른 친구들이 시험 때 한 과목씩을 맡아 부당하게 석대의 점수를 만들어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석대의 질서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오랜만의 안정감에 만족하던 병태는, 새로운 6학년 담임 선생님이 석대의 잘못을 밝히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석대를 옹호하고 석대의 잘못을 적어낸 반 친구들을 비난한다. 급장의 권력은 이 6학년 담임 선생님에 의해 막을 내린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매로 다스리며 학생들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고 등하굣길에 조를 지어 갑작스러운 석대의 공격에 맞설 수 있게 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해석하며 학생들은 여러 질문을 던졌다. 병태의 저항은 왜 성공하지 못했는가? 6학년 선생님의 훈육이라는, 학생 공동체의 밖에서 온 극단적 처방외에 학생들이 자력으로 문제해결을 할 수 없었나?
이 소설 내 갈등에서 피해를 덜 받은 승자는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의 대답은 석대나 병태, 선생님의 입장 등 여러 각도에서 모색해 볼 수 있다. 그중 간과해서는 안 될 인물은 바로 반 학생들이다. 반 학생들은 석대의 권력에 굴종하여 자발적으로 능력을 내어줌으로써 석대의 시스템을 공고히 한 인물들이다.
또 석대에게서 떨어지는 권력의 콩고물을 받아먹으며 병태의 저항을 좌절시켰던 인물들이다. 한편으로는 담임 선생님이라는 새로운 권력이 등장하자 이에 쉽게 적응하고 석대의 독재를 끝낸 인물들이기도 하다. 반 아이들은 기회주의자들인가? 아니면 새로운 권력과 역사를 만들 수 있는 주체들인가? 이 소설은 몰락하는 병태의 삶의 궤적을 통해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운다.
정당하지 않은 권력에 굴복하고, 굴종을 통해 나눠 먹은 단물은 내가 디디고 서 있는 공동체를 파괴한다. 승진, 고수익, 능력의 인정 혹은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며 누적된 피로감의 해소 굴종을 통해 얻는 유혹은 어디에든 있다. 그러나 그 유혹이 절차와 원칙을 무시하고 나의 상식에 도전한다면 마땅히 멀리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내가 몸담은 공동체를 건강하고 더 민주적으로 만드는 길이다.
<본 칼럼은 2024년 7월 11일 울산신문 “[리더스 싱크] 더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